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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22. 2022

K-장녀의 노선 변경

형광등 100개 켠 아우라를 만든 비결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났다. 10여 년 전, 전기도 물도 없는 아프리카에서 흙먼지 뒤집어쓰고 뒹굴며 뜨거운 전우애(?)가 쌓인 사이. 같은 길을 가는 후배도 있고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아 그곳에서 어느새 깊이 뿌리를 내린 후배도 있지만 다들 소중한 인연의 끈을 악착같이 붙들고 산다. 종종 만나 수다 떨며 그 시절의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삶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응원해 주는 후배들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햇수로는 3년 만에 얼굴을 봤다. 녹록지 않았을 그 사이 어떤 일들이 있던 걸까? 유독 반짝거리던 H의 얼굴을 보자마자 궁금증이 머릿속에 모락모락 피어났다.     


뭐야 뭐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얼굴빛이 환해. 광이나. 생기가 흘러넘쳐!     


H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진격이 떠오른다. 후진은 모르고 직진밖에 모르는 탄탄한 전차처럼 무시무시한 추진력을 겸비한 친구다. 비록 내가 연차로는 선배일지 몰라도 경험의 양과 질이나 업무 추진력을 생각하면 H가 분명 선배다. 같은 업계에 있다 보니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한 다리 건너 H의 소식을 듣는다. H에게는 늘 무서운 선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답답한 걸 못 참는 H와 일했던 후배들이 흘린 후기였음이 분명하다.      


H는 늘 쫓기는 사람처럼 말도 빠르고, 발도 빠르고, 생각도 빨랐다. 난 그게 그의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느긋한 코스 요리보다 속도가 관건인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그저 H의 취향이라고만 여겼다.      


선배, 마흔이 넘어서 그런 걸까요? 허무해요.

20대, 30대 미친 듯이 달려왔는데 남은 게 없어요.

결혼을 한 것도,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제 존재감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일 뿐이었어요.

생계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일에 몰입해야 했어요.     

근데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고요.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는 거였는데

나를 내팽개치고 그리 악착같이 살았는지 후회되더라고요.


H는 K-장녀였다. 홀로 두 자매를 키운 엄마를 위해 또래보다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작고 귀여운 페이를 받는 막내 시절부터 최소한의 생활비를 빼고 고스란히 집으로 돈을 보내는 게 당연했다. 연세 드신 엄마를 부양하는 일, 꿈은 많고 철(?)은 없던 동생을 뒷바라지하고 결혼시키는 일, 하다못해 어마 무시한 반려견의 치아치료비까지 모두 H의 몫이었다. 엄마의 웃음, 동생의 행복, 이 집의 귀염둥이 막내 반려견의 건강까지 살뜰히 챙기고 살려면 자신의 즐거움은 저 멀리 미뤄둬야 했다. 그렇게 20대, 30대를 가족에게 헌신하고 남은 40대의 H에게 남은 건 이마 사이에 깊게 팬 내 천(川) 자 주름과 여기저기 고장 난 몸뚱이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H는 삶의 방향키를 가족에서 자신으로 과감히 틀었다.       


일단, ’ 시간이 없다 ‘ 평생의 핑계 뒤에 숨는 습관부터 버렸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남들도  있다는 명품 가방도 샀다. 새벽잠을 쪼개 아침 수영도 다니고, 보톡스로 이마의 주름도 지우고, 고가의 매트리스 위에 지친 몸을 뉘었다. 거기에서 결제한 웹소설을 보며 오롯이 자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채우는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잃어버렸던 광채를 되찾았다. 쥐면 바스라   건조하고 위태로웠던 삶에 생기를 채웠다. 경주마처럼 내달렸던 인생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H는 용광로보다 뜨겁고 양궁 국대 선발전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에너지가 많은 친구니까 얼마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슬쩍 걱정이 차올랐다. 사람에게는 한계란 게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반응하던 H에게서 냉소의 차가운 기운이 흥건하게 느껴졌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실망해서라고만 생각했다. 쓰고 버려지는 업계의 차가운 현실이 H를 그렇게 만들었다.


전에 비해 통장의 여유는 좀 덜할지라도 마음의 여유가 가득한 H. 그 느긋함이 얼굴에 가득했다. 행동에도 말투에도 드러났다. 여전히 큰 딸만 바라보는 연세든 엄마, 언니의 그늘을 편안해하는 동생, 집안 내 서열이 자기가 더 높다고 생각하는 반려견까지 챙겨야 하는 가족들은 변함없다. 그런데도 H가 형광등 100개 켠 아우라를 장착하게 된 이유는 늘 뒷전이었던 나를 챙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고가의 화장품도, 최첨단 시술도 해내지 못했던 그 놀라운 일은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으면서부터 가능해졌다. 가족들의 바람, 회사의 요구, 사회적 위치가 ’해내라고 ‘ 아우성치는 목소리를 향해 일단 ’ 그간 많이 들어줬으니 닥쳐’라고 말한 후 끊어 냈다. 대신 내 안에서 자신을 향해 구조요청을 보내던 작은 S.O.S 신호에 귀를 기울인 결과다.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보통의 주기라면 아마 이번 연말쯤 다시 얼굴을 볼 가능성이 크다. 그때까지 딸로, 언니로, 회사의 구성원으로, 반려인으로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더 집중해 살기를 응원한다. 눈이 부셔도 좋으니 형광등 천 개, 만 개 켠 아우라로 가득 채운 H를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H 못지않은 아우라를 채우기 위해 나도 부지런을 떨며 살 사람이니 벌써부터 올 연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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