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l 27. 2022

흙돼지는 먹고 싶지 않아

오타가 남긴 선물


책을 읽다 눈을 의심할 단어를 목격했다. 제주에서 한라산 등반하던 부분을 읽는 중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에 오르기 전날 ‘흙돼지를 곁들여 한라산 소주를 마시며 전의를 불태웠다’라는 한라산에 올라 본 자라면 많이들 경험했을 지극히 흔한 이야기. 근데 흑돼지가 아니고 흙돼지? 앞뒤 맥락을 생각하면 분명 흙돼지는 이 부분에 나와서는 안 될 존재였다.      


흑돼지는 먹어 봤지만, 흙돼지는 먹어 보지 못했다. 적어도 제주에서는. 흙돼지의 맛을 상상해 봤다. 검은 털을 가진 제주 흑돼지는 흔히 먹는 핑크 돼지보다 전체적으로 쫄깃하고, 고소했다. 반면 흙돼지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기운만 상상하면 분명 텁텁한 흙내가 날 거 같다. 쫄깃한 고기와 흙을 같이 씹어 먹는 맛일까? 고기에서 흙내라니... 아. 상상하기도 싫은 맛이다.      


근데 세상에는 내 호불호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어쩌면 흙돼지도 존재하지 않을까? 내가 세상 만물을 다 아는 척척박사는 아니니 물음표를 품고 검색창에 흙. 돼. 지. 세글자를 쳐서 넣었다. 낯설지 않은 지명과 함께 흙돼지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주욱 이어졌다. 흙돼지가 맞다고? 어? 근데 세상에 백과사전에도 흙돼지가 있었다. 정. 말.       




제주에서 맛있게 먹었던 흑돼지와는 다른 생김새였다. 심지어 이 흙돼지는 주로 아프리카에 산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등산한 얘기가 아니고 배경이 제주였으니 그 부분에 나온 흙돼지는 안타깝지만, 흑돼지의 오타임이 분명했다.      


인쇄된 책에서 오타를 볼 때면 섬뜩하다. 작가가 초고를 쓸 때도 확인했을 거고, 이후 작가, 편집자, 교열자가 시간과 정성을 쏟아 교정지를 수없이 주고받으며 교정 봤을 텐데도 오타가 난다. 노트북 화면으로 보고, 종이로 뽑아 보고, PDF 파일로도 보는데 활자 틈바구니에서 툭하고 튀어나온다. 황무지에서도 싹의 틔우는 한줄기 잡초처럼 오타는 무시무시한 생명력과 존재감을 드러낸다. 출판계에서는 이걸 ‘오타 자연 발생설’이라 부른다. 8년 차 출판 편집자의 본격 하소연 에세이 <책갈피의 기분>을 쓴 김먼지 작가는 오타 자연 발생설에 대해 이렇게 추측했다.      


세상에 오타 없는 책은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오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책이 있을 수 있지만, 실은 거기에도 분명 오타가 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이 책에는 과연 몇 개나 나오려나. 이 자리를 빌려 모든 출판사 대표님과 독자 여러분께 알리고 싶다. 오타는 저절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쇄소와 제본소 그 어디쯤 사는 오타의 요정이 편집자를 엿 먹이려고 일부러 끼워 넣는다는 사실을. 진짜로, 정말로.   <책갈피의 기분> 中


‘오타의 요정’은 책 안에만 사는 건 안다. 방송 자막에서, 식당 메뉴판에서, 쇼핑몰 상품 소개에서, 엘리베이터 안 공사 안내문, 카톡 대화 등등 우리는 매일 오타를 만난다. 분명 담당자들이 수십 번 확인했을 글자들 속 삐끗한 오타를 볼 때마다 공포영화를 볼 때 보다 더 등골이 오싹해진다. 말과 글을 다듬어 먹고사는 직업병에서 출발한 증상이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일을 띄엄띄엄하는 걸까? 의아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누구도 일부러 오타를 내는 사람은 없다. 자기 이름이 걸린 일을 허투루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저 오타 요정이 강림했을 뿐. 수십 수백 번 확인해도 오타는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이다. 뒤늦게 오타를 확인한 담당자는 이미 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테니 나까지 얹어서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없다.   

   

오타 없는 책이 없듯 실수 없는 사람은 없다. 책에 오타 요정이 강림하듯 사람의 일상에도 실수 요정이 찾아오는 날이 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을까?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자책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오늘은 ‘실수 요정’이 찾아왔구나 하고 요정의 방문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내가 또 실수했구나 내 탓하기보다는 실수 요정의 장난을 받아 주면 된다. 좀 가벼운 마음으로 실수 요정이 다녀간 자리를 정리하고 나면 보이는 게 있다. 얻는 게 분명 생긴다.   

   

문맥상 흙돼지는 오타였지만 그 오타 덕분에 세상에 진짜 흙돼지란 이름을 가진 돼지가 존재하고, 심지어 그 돼지는 아프리카에 산다는 걸 알게 됐다. 오타는 손가락이 미쳐 날뛰어서 생긴 단순한 실수였지만 나는 그 덕분에 흙돼지의 세계를 한 뼘쯤 알게 됐다. 누군가의 실수가 나에게는 알아 두면 쓸 데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잡상식이 하나 더 늘었다. 그거 하나 안다고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머지않아 제주 흑돼지 앞에서 아프리카에 사는 진짜 흙돼지를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는 사람은 될 게 분명하다. 오타 하나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화 많은 사람 말고, 웃음이 많은 사람은 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마트폰과 아름다운 거리두기> 셀프 캠페인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