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하찮고 사소한 결심
넌 사는 이유가 뭐야?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내 앞에 툭 떨어졌다. 질문자는 인생에 있어서 살아갈 이유가 하나 둘 없어져 하루하루 살아갈 힘이 없어지는 상태라고 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출근은 왜 하나 싶고 그냥 힘이 없다고 울부짖었다. 나를 향해 던져진 물음표를 머릿속에서 뱅뱅 굴려 봤다. 그래, 나 왜 살지?
일단, 오늘은 우영우 데이.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봐야 한다. 내일은 후숙 중인 딱복(딱딱한 복숭아)이 맛있게 익을 타이밍이니 그걸 먹어야 한다. 금요일에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좀 떨기로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지. 다음 달에는 추석이 있으니 송편을 먹어야 하고, 10월에는 빨강, 노랑으로 물드는 가을 산에 올라야 한다. 조금만 지나면 붕어빵 노점도 영업을 시작할 테니 첫눈 맞으며 붕어빵을 먹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연말이 될 테니 별다방 프리퀀시를 채워 (쓰지도 않으면서 그저 받는 데 의의를 두는 이상한 연례행사인) 다이어리를 받아 한 해의 마침표를 찍는다. 새해가 되면 생일맞이 여행을 가고, 벚꽃 잎으로 샤워를 해야 한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계절이 되면 팥빙수를 개시하며 여름을 맞아야 한다. 그렇게 1년이 가고, 10년이 흐른다.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이런 하찮고 사소한 결심들이 모여 나를 살게 한다.
거창한 목표들을 이루고 싶어 안달복달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높은 자리에 올라,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주목을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강이 보이는 집에 살면서, 시즌마다 쏟아져 나오는 반짝이는 신상을 품에 안고 사는 삶. 사람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다 건너로 떠났다 돌아올 정도의 시간과 통장의 여유와 하차감 좋은 외제 차를 타는 게 성공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신 포도를 바라보는 여우의 마음이 가득한 시선으로 봐서였을까?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때마다 그 성공은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다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 했고,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했다. 자기 입으로 성공했다고 말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더 큰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자신을 혹독하게 다그치곤 했다. 독보적인 성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선배 곁에는 정작 마음을 터놓고 지낼 사람 하나 없다. 열정이 많아 자신을 갈아 결과를 내던 후배는 암에 걸려 그토록 사랑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사람들이 보기에 다 가지고서도 정작 중요한 걸 잃는 경우가 흔했다.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불행했다. 연약한 성공은 쉽게 깨지기 마련이고 깨지는 순간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 자신을 찔렀다.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겉으로 성공한 삶 = 행복한 삶]이라는 공식이 그제야 머릿속에서 깨졌다. 손바닥만 한 네모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야 벽은 무너지지 않는데 한 품에 안기도 힘든 거대한 바위를 쌓아 올려 벽을 만들어 보려고 아등바등하다가 수없이 깔리곤 했다. 볼품없이 너덜너덜하고 납작한 오징어가 되는 게 일상이었다.
만족도 노력이고 습관이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할 리 없다.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자신조차 잃게 된다. 그래서 손에 닿지도 않는 거창한 목표 대신, 일단 오늘을 잘살아 보기로 했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년이 된다. 한여름의 딱복처럼, 한겨울의 호떡처럼 시절의 즐거움이 묻어 있는 하찮은 목표점을 매일매일 세워두고 하나씩 클리어하는 삶. 누군가에겐 좀 느리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날 대신해 내 인생을 살아 줄 것도 아니니 그런 걱정 어린 시선은 일단 눈을 딱 감기로 했다. 내신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을 품에 가득 안고 주어진 날들을 알뜰하게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