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Sep 13. 2022

음악처럼 속마음도, 말뜻도 검색할 순 없나요?

스마트한 이과 선생님들의 열일을 응원합니다


     

카페에서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매장에 틀어 놓은 음악이 듣기 좋았다. 제목을 알아보려 가사에 귀를 기울였지만 내가 아는 노래는 아니었다. 스마트폰 음악 검색 앱을 켰다. 음악 검색 버튼을 누른 후, 노래가 나오는 스피커를 향해 스마트폰 마이크를 두고 몇 초간 기다리다 보면 앱이 노래를 식별해 곡의 정보를 알려준다. (기술은 날로 발전해 콧노래나, 휘파람만으도 검색이 가능한 서비스도 있다.) 신통방통한 인공지능(?) 선생님이 무사히 미션 수행하길 조용히 기다렸다. 무수한 소음 속에서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에 집중하기 위해 이미지화된 파장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열일하고 있었다.    

   

음악을 듣고 있어요.
소리를 분석 중이에요.      


라는 메시지가 몇 번 뜨더니 곧 알록달록한 음반 재킷 이미지를 비롯해 노래 제목, 가수를 알려줬다. 처음 이 기능을 알게 됐을 때, ‘이과 만세!’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상품명이 적히지 않은 물건 등 모르는 사물을 찍으면 어떤 제품인지 비슷한 물건을 찾아주거나 이름을 알아낼 때 사용하는 <스마트 렌즈>와 함께 내가 사랑하는 기능이다. 클릭할 손가락의 힘만 생기면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요즘 아이들에겐 뭐 그리 놀랄까 싶은 이 기능이 내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동전을 넣으면 음료 캔을 토해내는 자판기처럼 크게 보면 입력값을 넣으면 결과가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일 거다. 하지만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 텍스트 정보가 없는 이미지로 결과를 찾아낸다는 게 지독한 문과의 머릿속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기술이었다. 물론 이 스마트한 만물박사, 척척박사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방대한 데이터와 세계의 이과 석학들이 머리를 쥐어 짜내며 지새운 밤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 판단, 예측하는 인공지능 머신러닝 기술을 연마한 덕분이다. 음원을 살 수 있는 사이트까지 안내하는 자본주의적 가득한 친절함까지 확인하고 앱을 닫았으며 생각했다.      



음악 검색 앱이나 스마트 렌즈처럼
가져다 대기만 하면
사람의 속마음과 말의 속뜻을
알려주는 기술이 발명되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웃으면서 얘기하는 대도 눈빛에서, 말투에서 뾰족한 가시를 느낄 때가 있다. 세상 따뜻한 음성인데도 영혼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상대는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어쩐지 혼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친절한 행동이 오히려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입으로는 축하한다고 말하고, 얼굴 가득 웃고 있었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묘한 삐그덕거림을 느낀 후에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오해라고 믿고 싶지만, 그 이후의 행동과 말들은 나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 바쁘다.      


극단적인 ‘손절 엔딩’이 아닌 이상 얼굴을 보고, 말을 섞고, 죽으나 사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사이라면 더더욱 음성 검색, 이미지 검색 기능이 간절하다. 겉으로는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나 지금 울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 짜증스러운 표정 뒤로 <너무 불안해>라고 울부짖고 있을지 모른다. 축하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부럽고 배 아파>라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무례한 상황 속에서도 어금니를 한 번 꽉 깨물며 애써 미소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싹 다 뒤엎어 버리고 분노의 포효하고 싶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 사람 좋은 얼굴을 가면처럼 쓰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기 주저한다.      


상상하지 못했던 기능들의 발명으로 우리의 삶이 한층 편안해진 것처럼 언젠가 말속의 속뜻, 표정의 숨은 의미를 찾아주는 기술이 널리 퍼진 세상이 오진 않을까? 상상해 본다. 불필요한 오해나 감정 소모 없이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문과적 인간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눈부신 성과를 이룩한 이과 선생님들이라면 분명 불편함을 그냥 지나칠 분들이 아니란 걸 믿는다. 고작 100년도 안 될 세월 동안 달에 사람을 보내고, 스마트 폰으로 인류를 온갖 불편함에서 구원해낸 당신들의 능력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테니. 실용화 순간, 최선을 다해 사용할 소비자가 적지 않을 거라는 걸 기억해 주길 바란다.    

  

+ 근데 이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면 뜨겁게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패인 줄 알았는데 칼이었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