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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19. 2022

샛길도 길은 길

인생이 가로막혀도 방법은 있으니까


큰 태풍이 지나간 후 첫 주말. 늘 그랬던 것처럼 버스 첫차 시간에 맞춰 등산화 끈을 질끈 묶고 집을 나섰다. 아직 밖은 어둑어둑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분명 같은 시간엔 환했는데 가을이 깊어지니 해가 늦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는 첫차 말고 다음 차를 타야겠다 다짐하고 나의 최애 풍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집에서 버스로 40분 남짓. 북한산 숨은벽을 오를 수 있는 등산 코스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어둑했던 길이 한결 밝아졌다. 도로에서 등산로 초입까지 10분 남짓 걸어가는 내내 태풍이 휩쓸고 간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지나가느라 깊게 상처를 낸 흙길 위로 나뭇가지들과 산과 어울리지 않은 각종 생활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래도 폭격 수준인 남쪽에 비해 피해가 덜하다고는 했지만, 태풍이 남긴 작은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밤골탐방지원센터에는 일찌감치 도착해 오를 채비를 하는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몇몇 보인다. 나도 그사이에 슬쩍 끼어 준비를 시작했다. 집에서 나올 때 헐렁하게 묶었던 등산화 끈을 풀러 다시 야무지게 묶고, 등산 스틱도 명치 높이로 길이를 조절해 세팅했다. 마지막으로 등산용 내비게이션 앱을 켜는 것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하나 둘 셋!
등산 시작!
      

앱 속 경쾌한 목소리의 안내 신호에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탓에 비교적 잘 정돈된 탐방지원센터 쪽과 달리 등산로를 걸을수록 태풍이 할퀸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폭우에 휩쓸려 내려와 데크를 뒤덮은 토사, 덜 익은 상태로 나뭇가지째 떨어진 상수리 열매와 밤송이, 원래 자리를 이탈해 굴러 떨어진 크고 작은 바위 등등 쑥대밭이 된 산의 장애물들을 피해 둘러 가며 산을 올라야 했다. 평소보다 시간도 에너지도 2배 가까이 들 정도로 힘들게 산을 오르다가 발이 멈췄다. 태풍에 직격타를 맞은 듯한 커다란 나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쓰러진 나무는 굵기가 내 몸통 정도로 어린나무도 아니었다. 뿌리에는 거센 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 움켜쥐었을 흙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붙어 있었다. 거센 태풍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고 뿌리 끝까지 힘을 쏟았을 텐데 애쓴 노력이 무색하게 땅에 고꾸라졌다. 길을 가로막은 쓰러진 나무 앞에서 잠시 난감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앞서간 등산객들이 발걸음이 만들어 낸 새로운 길이 보였다. 사람의 힘으로 이동시키긴 힘든 크기니 나무를 피해 가다 보니 새로운 길이 생겼다. 태풍이 지나가던 밤,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왔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나무가 쓰러졌고, 길이 막혔다. 태풍 때문에 큰길은 막혔지만 길이 새로 생겼다. 좀 돌아가긴 했지만 내가 더없이 사랑하는 숨은벽의 풍광을 눈에 담는 데는 문제없었다.    

  

살다 보면 인생에 태풍이 몰아칠 때가 있다. 살아갈 길이 안 보여 눈이 캄캄할 때가 있다. 감히 치울 엄두도 안 날 어마어마한 장애물이 내 앞길을 턱 하니 막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 위세에 짓눌려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뭣도 모를 때는 누가 치워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몇 번은 누가 치워줬지만, 매번 치워주지는 않는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개를 살짝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그럼 분명 어딘가에는 샛길이 있다. 원래의 잘 닦인 길 보다 좁고 험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목표점을 향해 가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포기했더라면 마주할 수 없는 정상의 풍경을 샛길이라 좀 돌아가더라도, 신발이 좀 더러워지더라도 오르고 오르다 보면 결국엔 닿는다. 진척 없는 상황에 느슨해지려는 정신줄을 다잡는다. 그럴싸한 길이 아니어도, 볼품없는 샛길이라도 결국 내 목표는 바로 거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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