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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21. 2022

내 인생은 왜 맛대가리가 없지?

관건은 집중력


도무지 풀리지 않는 난제가 앞에 놓였을 때, 문제를 안고 끙끙 앓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망가지는 건 나였다. 그럴 때는 문제와 한 발 떨어져 신선한 바람이 오갈 바람길을 만들어 주는 게 답이라는 경험이 쌓였다. 공기가 텁텁한 방의 창문을 열어 환기하듯 시간과 돈이 허락한다면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 호락호락한 현실이 아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 둘 중 하나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비교적 합리적인 해결책은 책이었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내 앞에 놓인 문제와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책을 덜컥 집어 들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한 딴짓이다. 하찮은 우주먼지의 고민을 누가 듣고 있던 걸까? 아니면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계시였을까? 아무 생각 없이 책 속을 뒹굴뒹굴하다 머리를 띵 하고 울릴 구절을 발견했다.   

    

일본식 꼬치구이, 야키토리로 최초의 미쉐린 스타를 받은 '와다' 셰프와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맛있는 야키토리를 만들 수 있는 비법, 가장 중요한 핵심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겠지요. 여러 번 하는 와중에 자신의 마음을 응축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 인간이 지닌 능력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어요. 그래서 맛있게 구워지는지의 여부는 집중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식재료 맛을 보았을 때, 그 안에는 다양한 맛이 있지만 그것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지, 모두 먹고 있지만 느낄 수 있는 사람과 느낄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굽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이욱정의 <치킨인류> 中     


수 없이 두드리지만 이렇다 할 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이다. 눈을 뜨면 문을 두드리고, 눈 감기 직전까지 두드린다. 삼시세끼 밥을 먹듯 두드리고, 숨 쉬듯이 두드린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두드릴지 몰랐다.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과 짬이 있으니 어지간하면 열리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언젠간 열리겠지 싶어 어깨에 힘을 빼고 습관처럼 두드린다. 간절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니 마음 한쪽에서 이런 삐뚤어진 마음이 자라났다.      


‘어차피 당장 열리지 않을 문일 텐데 뭐. 옜다 두드림. 나 두드리긴 했어. 이만하면 됐지?’     


미쉐린 스타 셰프가 말한 ‘집중력’ 부분을 읽다 부끄러움에 귀 끝이 빨개졌다. 야키토리의 장인 와다 셰프의 눈빛만큼이나 서늘한 그 한 마디가 예리한 칼이 되어 순식간에 나를 순살 상태로 만들었다. ‘과연 나는 집중력 있게 두드렸나?’ 하는 물음표가 날카로운 갈고리가 되어 양심을 쿡쿡 찔렀다. 와다 셰프의 말 대로 인간이 지닌 능력은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집중력을 어디서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맛의 차이를 결정한다.     

 

내 인생은 왜 이리 맛대가리가 없을까? 생각했다. 남들은 달달하게 꿀도 빨고, 쉽게 날로도 먹는데 난 반찬 하나 없이 맨밥을 목으로 꾸역꾸역 넘기는 것처럼 사는 게 무(無) 맛이었다. 목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굳이 맛을 꼽자면 짜고, 맵고, 쓰고, 떫달까? 월급은 짜고, 현실은 맵고, 결과는 쓰고, 표정은 떫다. 내가 원하는 맛은 하나도 없었다. 맛대가리 없는 인생이라고 투정 부리는 게 전부였다.    

  

와다 셰프는 숯불을 조절하며 그다음 꼬치를 굽는다. 꼬치를 주시하다가 딱 한 번 뒤집는다.

"생선을 구울 때도 딱 한 번만 뒤집잖아요? 몇 번이고 뒤집으면 맛있는 즙이 다 빠져 버리니까요. 야키토리도 마찬가지예요. 많이 뒤집지는 않는 편이 맛있어요. 그리고 어떤 고기든 최초로 뒤집어 줄 때 타이밍이 가장 중요해요."

이욱정의 <치킨인류> 中           


미쉐린의 별처럼 별 몇 개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순 없겠지만, 내 인생을 맛있게 만들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불 위에 올리고, 언제 뒤집고, 어떤 양념을 더해, 어떤 접시에 올릴지는 오로지 내 선택에 달렸다. 집중력을 어디서 발휘하고, 어디서 힘을 뺄지도 내가 택할 수 있다. 타성에 젖어 느슨해진 정신을 조인다. 목과 어깨를 아프게 하던 불필요한 힘을 빼서 명치에 집중시킨다. 자연스럽게 구부정했던 척추가 세워지고, 굽었던 어깨가 펴진다. 바르게 자세를 잡고 집중한다. 자주 뒤집으면 육즙이 빠져 퍽퍽해지는 야키토리처럼 불맛이 제대로 오른 최적의 타이밍에 한 번에 뒤집는다. 지금이 바로 집중력을 다해 뒤집을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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