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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17. 2022

어떻게 해야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어요?

글팔이피플의 장사 밑천 대공개



수업 시간 10분 전 요가 센터 도착은 내가 세운 철칙이다. 수업 시작 전 10분 정도 일찍 들어가 목-> 팔-> 어깨-> 척추-> 다리 순으로 차근차근 몸을 푼다. 몸풀기의 마지막 단계, 하누만 아사나(일명 다리 찢기)에 다다를 때쯤 수업 시작 직전에야 대다수의 회원들이 느릿느릿 들어온다. 일찌감치 도착하더라도 요가 매트에 누워 사바 아사나(송장 자세)로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젠가 가까스로 수업 시간에 직전에 도착해 몸을 풀지 못한 채 수업을 들은 적 있다. 하루아침에 몹쓸 몸뚱이로 레벨 다운된 게 아닐 텐데 평소에 잘 되던 동작을 완성하는데 수 십 배 힘이 들었다. 몸을 풀었을 때와 풀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센터에서 흔히 ’고인물‘로 불리는 오래 수련한 회원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몸풀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현대인을 위한 합법적인 고문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극한의 늘리기, 찢기, 구기기, 비틀기를 견디지 못한 초심자들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연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다. 요가는 오래 했다고 꼭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영어 수업처럼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 상급반으로 올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만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성장의 기쁨과 순간의 짜릿한 희열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도 요가와 비슷하다. 2017년 처음 브런치에 처음 발을 들인 후 2년 만에 첫 책을 내고, 다시 1년 후 두 번째 책을 냈다. 그 결과들이 쌓이기까지 내가 가장 한 일은 글을 ‘잘‘ 쓴 게 아니라 글을 ’꾸준히‘ 쓴 거였다. 초반에는 누가 봐주길 기대하며 쓴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바깥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온라인 일기장 삼아 글을 썼다. 그러다 어느 날, 정신 차리고 슬쩍 뒤돌아보면 크고 단단한 결과가 되어 있었다. 목표가 있어서 달려온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걷다 보니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착해 있던 거였다. 내가 이렇게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단순한 비결이 있다.      


① 일단 쓴다

언제나 100%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 쉽게 읽히고,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가볍지만은 않은 무언가가 남는 의미 있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어 야심 차게 첫 문장을 연다. 하지만 100% 만족스러운 글을 써 본 적은 아직 없다. 조무래기 시절에는 노력하면 되는 줄 알고 몇 날 며칠 붙들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손을 대면 댈수록 구멍이 숭숭 뚫린 너절한 글이 되곤 했다. 잘 쓰기를 바라면 금세 지친다. 그러니 일단 쓴다. 통념에 반하거나 사회를 전복시킬 나쁜 뜻을 가진 위험한 글만 아니면 된다. 일단 쓰고 군더더기는 없는지, 반복되는 표현이나 단어는 없는지, 메시지는 간결한지, 오타는 없는지. 딱 그 정도만 다듬는다. 어깨에 힘을 빡 주는 대신 단전에 힘을 적당히 주고, 느슨하게 계속 쓰다 보면 분명 잘 쓴 글이 하나쯤은 나온다. 분명.


② 목표 개수를 정한다

계획형 인간이어서일까? 목표가 없으면 한없이 나태해진다. 그래서 일주일에 발행해야 할 목표 개수를 정했다. 지금은 고정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글을 쓴다. 처음에는 쓰고 싶을 때만 썼더니 한 달에 두세 개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창 쓸 때는 일주일에 5일 글을 올렸다. 출근 전, 카페에서 쓰기도 하고 일찌감치 사무실에 가서 써야 그 양을 맞출 수 있는 정도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출석 도장을 찍으면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기준을 세우고 착실히 실행했다.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켜가니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트와 구독 버튼을 눌러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묘한 의무감이 생겼다. 어쩌다 지나는 손님과 이 변방의 브런치까지 찾아와 꾸준히 찾아와 주는 구독자들이 언제 와도 읽을거리가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영양가 없는 헛소리라도 일단 일주일에 2개는 쓴다.

     

③ 총알을 모아둔다

빈 페이지에 깜박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뭘 쓰긴 해야 하는데 머리는 텅 비어 있고, 커서의 깜빡임은 경주마의 엉덩이를 때리는 기수의 채찍처럼 따갑다. 그럴 때 글감을 모아둔 총알 상자를 연다. 작가에게 글이 총이면, 글감은 총알이다. 천재적인 작가들은 키보드에 손을 얹는 순간 뇌에서 총알이 발사해 손가락이 춤을 추듯 글을 쓸까? 하지만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는 겨울잠을 앞둔 부지런한 다람쥐처럼 수시로 글감을 모아둬야만 한다. 내 총알 상자는 스마트폰 메모장과 사진첩이다. 책을 읽다 마음에 박힌 문장, 지인들과 수다를 떨다 귀에 꽂힌 누군가의 한마디, 산책하다 만난 풀숲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길고양이를 찍은 동영상, 횡단보도 위에 누군가 떨구고 간 두부 한 팩 사진 등등 이 모든 게 글감이 된다. 어떤 이유로 기록해 뒀는지 의도는 희미하지만, 그렇게라도 남겨두지 않으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글감이다. 그렇게 수 천장의 사진과 수도 샐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장과 단어가 글감 상자에서 잠자고 있다. 그날의 날씨와 기분, 시의성과 화제성을 고려해 글감을 골라 글을 쓴다.


④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언젠가 출판사 담당 에디터로부터 의외의 말을 들었다. ’작가님 글은 조회수가 되게 높은 편이네요.’ 타 플랫폼과 달리 브런치는 각 글의 조회수가 공개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글의 조회수만 알았지 다른 작가님들의 상황이 어떤지 몰랐다. 다들 이 정도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한다는 걸 브런치 작가님들과 여러 번 작업한 경험이 있는 에디터의 증언을 통해 깨닫게 됐다. 솔직히 이건 횟수의 승리다. 얼마나 자주 들이대냐에 따라 알고리즘 신의 가호를 받는 기회가 늘어난다. 타자가 야구 방망이를 자주 휘두르면 헛스윙도 분명 있지만 공을 맞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게 자주 맞다 보면 감각이 살아나고 홈런을 칠 확률도 상승한다. 뭣도 모를 때는 홈런을 치고 싶어서 어깨에 힘을 주고 멋진 홈런을 만들 공이 오길 기다렸지만 결국 타자 아웃행이었다. 폼 안 나는 번트라도 때리고 출루를 해야 점수가 난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쓰다 보면 보이는 게 있다. 글을 올려야 할 적절한 타이밍, 클릭을 부르는 제목,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소재는 하루아침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꾸준하게 들이대야 팔리는 글의 결을 알게 되고, 그런 글을 계속 쓰다 보면 결국 기회는 온다.      




요가의 중급 후굴 자세  반듯하게  상태에서 서서히 목을 뒤로 넘기고 허리를 꺾어 바닥에 손을 닿게 만드는 ‘드롭  있다. 분명 어제는 힘들었던  자세가 오늘 아침 덜컥 성공하기도 한다. 넘어가면서도 ‘이게  되는 거지?’  자신도 의아하다. 하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리가 없다. 어제 시도하고, 지난주에도 도전했으니 차곡차곡 스킬과 경험이 생겼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이 쌓인 결과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발짝  목표지점에 다가가는 일이 있다. 요가가 그랬고 글쓰기가 그랬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얻을  있는 결과의 달콤함은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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