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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24. 2022

'해 봐!'라는 말의 무게

‘권하기’는 말보다 행동



소설이나 드라마도 좀 보고 SNS도 해 봐!  

친구는 내게 말했다. 소설과 드라마, SNS를 통해 자신이 위안과 즐거움을 얻은 것처럼 지금 내게 그것들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쉽게 과몰입하는 편이라 저 중독성 높은 세 가지를 했을 때의 내 삶이 눈에 뻔히 그려졌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거나 스마트폰에 눈이 박힌 듯 SNS에 빠져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아예 벽을 치고 사는 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어쩌다 흥미가 생긴 작품을 보기도 하고 수업 시간표를 찾아보기 위해 요가 센터 공식 SNS에 종종 들어간다. 업무나 정보 검색 때문이 아니라면 굳이 드라마를 챙겨 보거나 SNS를 들춰 보진 않는다. 소설 대신 그 외의 잡다한 분야의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대신 요가나 등산을 한다. SNS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구경하듯 산책하며 주변 사람과 사물을 구경한다. 나도 친구한테 말한다.  

    

요가나 등산 재미있어.
산책도 좋고.

친구도 맥주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나도 저런 표정이었겠구나.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류의 대화를 수없이 했지만 난 드라마를 챙겨 보지 않고, 친구도 등산을 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이 경험을 통해 얻은 즐거움과 위안을 친구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 이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가 한 귀로 들어가 한 귀로 빠져나가는 체험은 십수 년째 반복 중이다.      


하루에 1만 보를 걷고, 일주일에 두 번 글을 쓰고, 일주일에 다섯 번 요가를 하고, 한 달에 3~4번 산에 가는 일. 내게는 평범한 일상이 된 습관이지만 안 해 본 사람에게는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공중파와 ott를 넘나들며 요일마다 다르게 방송되는 별별 드라마를 챙겨 보고, 각 캐릭터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힌 두꺼운 소설책을 읽고,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꼬박꼬박 사진을 찍어 SNS를 올리는 부지런함. 평생 저예산 B급 영화만 만들었던 내가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는 수준의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랄까?  내가 느끼는 강도는 그 정도의 급이다.


입 안에서 불쑥 ‘해 봐!’를 내뱉고 싶을 때, 텅 빈 동공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튀어나오려는 그 말을 목구멍 쪽으로 끄집어 내린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100% 단속은 불가능하다. 10번에 2~3번은 주책없이 바깥으로 터져 나온다. 그래도 7~8번은 목구멍에 갇히니 선방이다. 내가 좋았다고 상대방에게도 좋다는 보장은 없다. 매번 하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처음 해 보는 사람에게는 어렵기 마련이다. ‘해 봐’라는 새털처럼 가벼운 말 대신 꾸준한 행동으로 보여준다. 불타오르는 새빨간 북한산 단풍을 사진으로 보내고, 등산하고 내려와 먹는 도토리 묵무침과 막걸리 맛을 찬양한다. 요가로 펴진 쇄골이 드러날 옷을 입고, 여운이 길었던 에세이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은 글을 쓴다. 영향을 받을 사람은 받는 거고, 아니어도 내 안의 생각 근육, 글 근육, 생존 근육이 남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걸 나누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귀여운 본성이다. 하지만 그 욕심이 과하면 오지랖이고, 헛메아리다. 뱉어 봤자 공중에 흩어질 백 마디 말 보다 진득한 행동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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