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도, 관계도 예리한 칼이 필요한 이유
관광객처럼 잠시 들르는 여행 말고 현지인처럼 머무는 여행을 좋아한다. 5일 이상의 여행을 할 때는 되도록 숙소는 주방 시설이 있는 곳을 택한다. 호스텔이나 에어비앤비도 좋고 레지던스도 좋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5일 이상 바깥 음식을 먹기에는 위장 상태도, 지갑 사정도 부대낀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기 전 거행하는 미션이 있다.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현지인 틈에 섞여 마트나 시장에 들러 장을 본다. 이건 여행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동네 주민처럼 어슬렁어슬렁 각 코너를 돌며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구경한다. 우리나라에 없는 식재료는 신기해서 눈이 돌아가고, 우리나라에 있는 식재료는 가격이나 모양을 비교하느라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간다. 그 재미에 취하면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시간이 스르륵 사라진다. 그 전에 겨우 정신 줄을 붙잡고 저녁상에 오를 재료를 골라 숙소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오가는 숙박업소의 주방 기구들은 구색만 갖춰져 있다. 접시나 냄비, 컵이야 깨끗이 씻어서 쓰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칼이다. 안전의 문제일까? 아니면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이 상주하지 않아서일까? 보통 숙박업소의 칼은 예리함을 찾아볼 수 없다. 무딘 걸 넘어 칼 모양의 스테인리스 덩어리에 불과하다. 과일은 껍질을 벗겨내는 게 아니라 베어내야 하고, 질긴 근섬유 조직이나 딱딱한 껍데기가 있는 고기는 자르는 게 아니라 찢는 수준이다. 무딘 칼로 아무리 용을 써봐야 결국 입에 들어오는 건 찢어지다 못해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된 음식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데 쓰레기통으로 가기 직전의 걸레처럼 너덜너덜하게 해지고 찢긴 고기라서 맛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각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칼이 잘 들지 않으면 잘린 부분의 세포가 너덜너덜하게 짓이겨지고, 그 통증으로 좋지 않은 맛이 난다고 한다. 제대로 잘리지 않으면 모양뿐만 아니라 맛도 망가지는 거였다.
어느 유명 셰프가 쓴 책 속에서 그 내용을 읽고 망가진 관계가 떠올랐다. 무딘 칼로 애써 자른 고기처럼 너덜거리고, 좋은 맛이 나지 않던 사이 말이다. 미련이든 연민이든 아니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비겁함이든 단번에 잘라내지 못하고 꾸역꾸역 관계를 이어갔다. 예리하지 않은 칼로 아무리 힘을 줘봤자 잘리는 게 아니다. 관계의 세포는 짓이겨지고 통증은 좋지 않은 맛을 뿜어낸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짓이겨진 감정에서 좋은 마음이 우러날 리 없었다. 일단 침묵 뒤에 숨었고, 그마저도 못 견디겠으면 눈을 감아 버렸다. 상대방은 시간이 쌓여 관계가 희미해지고,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은 짓이겨진 감정이 내뿜는 맛없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거리를 둔 거다.
좋은 칼을 가늠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먼저 적당한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너무 가벼우면 허투루 나갈 수도 있고, 또 너무 무거우면 손목에 부담을 준다. 또 좌우 균형감도 중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재료를 썰고 다질 때 손목에 과하게 힘이 들어가고, 식재료가 원하는 대로 썰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칼의 성능을 따지는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절삭력’이다. 칼의 절삭력은 각도에서 나온다. 숫돌 위에서 각도를 얼마나 주고 연마하느냐에 따라 예리함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마음에도 예리한 칼이 필요하다. 적당한 무게감과 균형감을 바탕으로 어떤 각도에서 보고 연마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음속 칼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상처만 도려내기도 하고, 아예 관계를 잘라버리기도 하니까. 중요한 건 마음속 칼은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무게감과 균형감을 가지고 어떻게 연마하느냐까지 오롯이 내 몫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망가진 관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