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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20. 2023

100% 투명한 마음의 축하를 받으면 생기는 일  

신사역 사거리에서 뿌에엥

유독 정신없던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금요일 끄트머리에 잡아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간 만나지 못했던 건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했고, 또 각자 먹고살기 바쁘다는 흔한 핑계도 있었다. 마음은 있었지만 당장의 급급한 일들에 치여 미뤄뒀던 만남의 디데이를 금요일로 잡았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영혼이 탈탈 털린 일주일을 무너지지 않고 살아냈다. 금요일 6시가 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서는 나에게 누가 물었다.     


어디 좋은 데 가세요?

네. 신사역이요.

좋겠네요. 부러워요.

네? 뭐가 부러워요?

그냥 다요.     


금요일, 신사역에 가는  부러울 일인가? 마음이 바빠 급하게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분주하게 옮기면서도 고개가 저절로 갸웃했다. 가는 이유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와 만나는지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신사역'이라는 목적지를 말했을 뿐인데  표정에서 그게  티가 났나 보다. 발에 날개라도   고개를 넘어 약속 장소인 신사역 근처이자 가로수길의  태국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반가운 얼굴이 도착해 있었다. 간간이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얼굴을  지는 1년여 만이었다. 그때는 각자 무거운 고민을 안고 있던 터라 둘다 얼굴이 ‘시멘트 그레이색이었다. 방향키가 고장  작은 통통배처럼 넘실대는 거대한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당시에는 상상도  했을 그림 안에 들어와 있다.       


일주일간 그다지 배도 고프지 않았다.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허기를 지우기 위해 밀어 넣는 음식 말고, 수다를 떨며 느긋하게 먹는 밥 다운 밥은 오랜만이었다. 쏨땀과 푸팟퐁커리같은 태국음식을 한상 거나하게 차려 놓고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얘기를 하느라 음식이 남았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다. 맨 정신이었다면 우리 둘 다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인스타 갬성 가득한 포토제닉한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수다가 이어졌다. 살아온 얘기, 사는 얘기, 살아갈 얘기까지... 화수분 같은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얼마 후 영업 마감을 알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고서야 수다를 정리했다. 그마저도 아쉬워 역까지 걸어가는 내내 다음 만남을 계획했다. 신사역 앞에서 헤어지기 전, 노란 꽃다발을 받았다. 나와 만나기 전 누군가에게 받았겠거니 했는데 그건 나를 위해 준비한 거였다. 꽃 선물은 언제 받아도 기분 좋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진 후, 나는 7호선을 타기 위해 신사역 사거리에서 논현역 방향으로 걸었다. 신사역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받은 꽃다발 속 꽃이 무슨 꽃일까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 사이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카드를 발견했다. 카드 안에는 축하와 응원을 손글씨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카드를 읽다 눈물을 왈칵 쏟았다. 신호가 바뀌고도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읽고 또 읽었다. 불금의 흥이 넘쳐나는 신사역 사거리에서 뿌에엥 눈물을 뿜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누군가의 좋은 일에 조금의 거짓이나 불순물 없이
100% 투명한 마음으로 축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새삼 느낀 소식이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써주세요.     

마감에 쫓긴 한 주였다. 일의 마감, 원고의 마감에 치여 축구공처럼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마음은 급한데 결과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구르고는 있는데 이게 골이 될지, 아예 골대를 빗겨 날지 알 수 없었다. 골이 안 된다면 유효슈팅이라도 되면 좋겠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그렇게 쉼 없이 슈팅을 때리다가 진이 다 빠진 방전 상황이었다. 그 상태에서 누군가의 진심 어린 축하와 순수한 응원이 담긴 카드 한 장에 에너지가 급속 충전됐다.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준 한 마디에 그간 켜켜이 쌓여있던 불안이 사르르 녹았다.     


귀여운 손 글씨 응원이 담긴 메시지 카드를 다이어리 첫 장에 붙여 뒀다. 흔들리고 불안할 때마다 펼쳐 보기 위해서. 앞으로도 난 분명 수없이 흔들리고 무너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신사역 사거리에서 눈물을 쏟게 했던 그 카드를 펼쳐 보면서 다시 무릎에 힘을 빡 주고 일어날 거다. 그 어떤 값비싼 자양강장제보다 더 강력한 효능이 있는 그 카드 한 장이면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고,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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