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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29. 2023

아무 말 대잔치가 필요해

아무 글을 위한 변명

몇 주 동안 머리에 쥐가 나도록 준비했던 일이 마무리된 건 오후 3시 무렵. 아직 해가 중천인데 일이 끝났다. ‘직퇴의 축복’이 내린 덕분에 진이 빠진 채로 각자 집으로 향했다. 그들과 헤어져 전철역으로 가면서 주머니 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절친이 궁금했다.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10대 후반부터 무수한 흑역사를 주고받은 친구. 이제는 경기도의 북과 남에 흩어져 산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본 지 오래다. SNS 메신저에 ‘근처에서 일이 끝났어.  시간 괜찮으면 얼굴을 보...’까지 쓰다 창을 닫아 버렸다. 이제는 불쑥 연락해 얼굴을 보자고 하기 어려운 사이가 됐다. 친구로 지낸 시간보다 이제 엄마이자 아내로 산 시간이 더 진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남 걱정’이었다.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게 그 시절, 우리의 낙이었다. 수중에 돈이 좀 있으면 공연이나 전시를 보며 아무 말 대잔치를 했고, 돈이 없으면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목이 아프도록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넘치던 시절, 광화문 예술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홍대까지 걸어와 술을 마시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광화문을 지나 서대문, 충정로, 아현, 이대 앞, 신촌, 홍대 입구까지 걷고 또 걸었다. 걸음 수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그 허튼 날들을 자양분으로 사회인이 됐다. 30대를 거치며 번아웃과 육아 우울증의 고비를 견딘 덕분에 비교적 평온한 40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친구는 딸을 하나 낳아 엄마가 됐고, 나는 책 두 권을 낸 작가가 됐다. 초등학생인 영특한 친구 딸은 엄마의 말에 치밀한 논리로 반박하고, 뜻밖의 출간 작가가 된 난 문자에 오타만 나도 ‘작가 선생님이 왜 이러실까?’라는 답장을 받는다. 즉석 떡볶이를 먹은 후 한국인의 디저트, 눌은 볶음밥을 박박 긁어먹으며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걸 지상최대의 낙으로 여기던 우리. 이제 부담스러운 직함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내가 요즘 뾰족하고 까칠한 건 체내 아무 말 수치가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종종 아무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 영락없는 어른이 됐다. 아무 말이나 했다가 괜히 감당 못하고 발목 잡힐까 봐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입을 다문다. 매번 홈런을 치지는 못하더라도 안타나 번트가 되는 말을 던져야 하는 사람이 됐다. 종종 이렇게 ‘아무 말’을 ‘아무 글’로 치환해 쏟아낸다. 하지만 텍스트로 남는 글 말고 공기 중에 휘발되는 아무 말이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정기적으로 효율이나 논리, 근거 따위 집어치우고 말장난과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며 체내 아무 말 지수 농도를 높여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이제 그런 것들은 쓸모없는 시간 낭비, 비생산적인 대화로 치부된다. 지독한 효율 강박이 남긴 결과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눌까? 재테크와 부동산, 주식과 머니 파이프 라인 확장에 귀가 솔깃하다. 이게 바로 진정한 ‘으른’의 대화인가? 현재의 경제 사정과 노후 대비 상태가 대화 주제가 되면 난 거인 나라에 뚝 떨어진 걸리버 신세다. 위압감에 몸과 마음이 위축된다. 건강한 남들의 경제 상황과 비교하면 내 현실은 허약하고 미래는 불안하다.     


통장 속 숫자가 인생이란 시험의 점수라도 되는 듯 사랑(?)의 매가 난무하는 대화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몸과 마음이 욱신거린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불호령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된다. 그래서 그 시절의 아무 말 대잔치가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 아무 말 대잔치를 함께 열 파티원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들 멋진 ‘으른’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허튼소리는 금지가 됐고 아무 말 파티는 그 어떤 공지도 없이 끝났다. 아무 말을 던지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다시 오긴 할까? 아무 말을 주고받는다 해도 서로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을 사람이 생길까? 아무 말 애호가는 이렇게 아무 글이나 던지며 지난 아무 말 대잔치의 날들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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