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이유
수요일,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 주말을 기약하기에는 벚꽃은 우리를 기다려 줄 리 없었다. 며칠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엄마를 모시고 옆 동네 벚꽃을 보러 갔다. 차로 10여 분 거리.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중랑천 변을 따라 벚꽃이 팝콘처럼 팡팡 터지는 둑방길이 우리의 목적지다. 오전 11시 일찌감치 도착해 근처에서 밥부터 먹기로 했다.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한 횟집으로 들어갔다. 횟집에 가는 일은 내 의지가 아니다. 통 입맛이 없어서 뭘 시원하게 드시지 못하는 엄마를 위한 특단의 조치다. 엄마가 좋아하는 회를 드시면 기운이 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모둠회가 나오기 전 세숫대야만 한 대형 접시에 멍게, 삶은 피조개, 초밥, 홍어회, 콩나물을 얹은 코다리찜이 푸짐하게 나왔다. 여기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몇 개 없었다. 반면, 날음식을 좋아하는 엄마의 젓가락은 춤을 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신이 나서 대낮부터 먹은 맥주 한 잔에 취한 듯 실없는 소리를 던졌다.
딸 낳길 잘했지?
딸이 돈 벌어서 이렇게 회도 사주고.
딸 잘 키워서 이런 것도 먹고 말이야.
엄마 좋겠네.
내가 밥을 살 때면 늘 곁들이 반찬처럼 따라오는 셀프 칭찬 타임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엄마의 답은 복붙한 듯 매번 같다.
그럼. 딸 잘 뒀지.
네 아빠가 그만 낳자고 하는 걸
엄마가 우겨서 낳았는데 낳길 잘했네.
여기까지는 비슷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집을 나서기 전까지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엄마가 덧붙인 한 마디가 마음에 코다리 가시가 콱 박힌 듯 따끔했다.
밥 안 사줘도 좋아.
내가 딸한테 사줘도 괜찮으니까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어.
나이 들어서 골골거리며 딸한테 얻어 먹는 것 보다
젊은 몸으로 벌어서 내가 사주고 싶어.
일흔이 넘은 엄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크게 앓는다. 아이들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쑥쑥 큰다는데, 어르신들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기력의 눈금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구석구석 고장 난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아침저녁으로 형형색색의 약들을 한 주먹씩 삼켜야 한다.
엄마의 말을 듣고 반 잔 남은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메말라가는 초밥을 영혼 없이 입에 집어넣었다. 몇 번을 씹어도 초밥의 밥알도 엄마의 말도 입에 뱅뱅 돌 뿐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조미료가 듬뿍 든 미역국 국물의 힘을 빌려 초밥의 잔해들을 식도로 밀어 넣었다.
내가 계산을 하는 사이, 맥주 한 잔에 살짝 취기가 오른 엄마가 말했다.
효녀 딸이에요. 이렇게 좋은 날 벚꽃 보자고 데리고 오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주변 사람들이 다 부러워해요.
흥 오른 손님의 궁금하지도 않은 말이 익숙해서일까? 직원은 눈은 포스기에서 떼지 않은 채 카드 계산을 하며 텅 빈 말 던졌다.
아휴 그럼요. 좋으시겠어요.
다음 코스는 벚꽃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로스터리 카페였다. 가을이면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고, 겨울이면 눈이 쌓이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커피 맛집 겸 뷰 맛집이다. 계절마다 한 번씩은 와서 엄마와 커피를 마신다. 언제나 그랬듯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엄마는 샷 하나 뺀 따뜻한 아메리카노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커피를 홀짝이는 시간. 오랜만에 사람 많은 곳에 온 엄마의 눈이 바쁘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 산책 나와 신난 반려견,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있는 사춘기 아이를 불러 세워 사진을 찍어 주는 엄마와 아빠. 휠체어에 태운 반수면 상태로 고개가 꺾인 어르신과 머리 위 벚꽃을 번갈아 보며 걷는 중년 남성이 차례로 지나갔다. 엄마와 함께 벚꽃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몇 번이나 있을까? 매년 하얗게만 보이던 벚꽃이 올해는 유독 붉은빛이 진해 보인다. 횟집에서 불쑥 엄마가 던진 그 한마디에 눈이 시뻘게져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