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자영업의 세계 체험기
새벽 6시, 집에서 출발해 일산에 도착하니 7시 30분. 주말의 여유가 잔잔하게 깔린 오피스텔이 가득한 번화가에 내가 있다. 개업 축하 화분의 리본이 나풀거리는 카페가 오늘의 목적지다. 절친하게 지내는 선배 언니가 카페를 오픈했고,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주는 마음으로 일일 알바 제안을 덜컥 수락했다. 대학 시절, 발바닥이 너덜너덜해져 하루 만에 포기를 선언했던 갈빗집 알바를 제외하고는 요식업계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었다. 카페 일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테이블 닦기나 컵 설거지라도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선배의 도움 요청에 흔쾌히 OK 했다. 오피스텔이 빼곡한 동네니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 직직 끌고 느긋하게 커피나 테이크아웃 하러 오는 손님이 간간히 있겠지? 하지만 이 오만한 상상은 정확히 30분 후에 와장창 깨졌다.
굳게 닫힌 카페 앞 계단에 앉아 초보 사장님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코 앞 호수 공원으로 아침 운동을 가는 어르신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들 중 오전에는 10명만 와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이 사장님이 도착했다. 눈웃음이 트레이드마크인 선배의 얼굴에는 10년 넘게 알고 지내며 보던 얼굴이 없었다. 피곤, 짜증, 긴장, 불안 등등 언제나 내 얼굴에 가득했던 감정들이 선배의 얼굴에 가득했다. 굳이 따지자면 조급한 쪽은 늘 나였다. 그런 나를 다독이며 위로하는 역할은 선배였다. 내가 갔던 날은 개업 3일 차. 그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각종 기계의 전원 버튼을 능숙하게 누르며 선배는 그사이의 일들을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처럼 막연히 카페 창업을 꿈꾸며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종종 매물이 나오면 보러 갔었던 거까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업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어떤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기라도 하듯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 어? 하는 순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사업자등록증을 낸 상황. 평소의 선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과 결정들을 분위기에 휩쓸려 하고 있더란다.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한 달 사이 사장님이 됐다. 그러니 모든 게 시행착오였다. 가게를 넘긴 전 주인은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편안하게 물어보라고 했지만 계약서를 쓰고 난 후 태도는 달라졌다. 예상은 했지만 현실 차가웠다.
3일 차 사장과 고양이손 아르바이트생은 오픈 준비를 30분 만에 끝내야 했다.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전날 해동 시켜둔 빵을 자르고, 커피 머신에 원두를 채우고, 냉동 튀김을 소분했다. 얼추 잡일을 끝내자 초보 사장님은 나를 음료 제조대 앞에 집합시켰다. 각 음료에 들어갈 재료의 양과 순서가 적힌 코팅지를 가리키며 이대로만 만들면 된다고 했다. 평소 아메리카노만 먹으니 관심을 두지 않아 몰랐는데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할 만큼 다양한 음료가 있었고, 각기 레시피는 달랐다. 얼음의 개수, 원액의 양이 기호와 숫자로 공격했다. 흔들리는 내 동공을 본 선배는 말했다.
아메리카노가 대부분이야. 아메리카노는 이 버튼만 누르면 돼.
그냥 나를 안심시키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부디 손님들이 아메리카노만 시키기를 빌었다. 다음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샌드위치. 토핑에 따라 무한 조합이 가능한 철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는 소스와 재료를 기억하는 일은 아직 초보 사장도 힘든지, 샌드위치 제조 섹션에는 A4 용지에 사장님의 손 글씨로 쓴 메뉴별 소스와 토핑 개수가 적혀 있었다. 그 종이는 내게 팔만대장경처럼 느껴졌다. 분명 글씨이기는 한데 뭔 말인지도 모르겠는 글자가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신이 탈출하려는 사이 포스기에 영업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 시간이 오전 8시. 시계를 확인하자마자 배달 주문 오더가 왔다는 알림음이 떴다. 띵동 띵동 띵동! 고장이나 오류가 난 게 아닌가 싶어서 확인했는데 정말 주문이 쏟아졌다. 나와 동시에 눈이 마주친 사장님은 말했다.
어? 이게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러지?
누가 주말 오전에는 브런치 세트를 먹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법이라도 만든 걸까? 들어가는 재료가 많아 손도 많이 가는 브런치 세트 주문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평일에는 오전 10시에 오픈하고, 전 사장의 조언대로 주말에는 오전 8시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주말 영업은 처음인 상황. 평일 보다 주말에 영업이 잘 된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초보 사장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어제 처음 왔던 아르바이트생은 10시에 올 예정. 우리는 그 친구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이 주문을 소화해야 했다. 재료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달려들어 하나하나 메뉴를 완성했다. 굽고 튀기고 얹고, 뿌리고, 담아 포장까지... 뭐가 빠졌는지조차 모르는 고양이손 아르바이트생은 하나하나 사장님께 물어 가면서 속도전을 치렀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주문이 쌓이면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주문 거절 버튼을 눌렀다.
영혼이 탈탈 털려 주문을 소화하는 사이 10시가 되자 아르바이트생이 뛰어 들어왔다. 이제 갓 스무 살, 인생 처음 알바를 시작한 아르바이트생까지 합세해 초보 셋이 우당탕탕 오전을 보냈다. 밥을 먹을 여유도 없었고, 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올라온 개기름을 보고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일까? 불과 반나절 만에 고양이손 아르바이트생은 ’ 박이사‘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제야 남의 밥 챙겨주느라 놓친 내 끼니로 김밥을 우물우물 씹을 수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코팅된 기름 냄새를 품고 마감을 했다. 사용했던 장비를 끄고 집기들을 설거지하고, 쓰레기까지 정리하고 나니 밤 8시 30분. 13시간 넘게 종종거렸던 작은 카페를 빠져나왔다. 고생했으니,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초보 사장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했다. 한시라도 빨리 내 몸을 이부자리 위에 펴 놓고 싶었다. 묵직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적한 지하철, 까만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산발한 머리, 퀭한 표정을 겨우 마스크 안에 숨기고 있었다. 이제 매일 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초보 사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카페 일이 우아하지만 않다는 걸 알았지만, 아는 것과 경험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투자금과 수익, 인력 컨트롤, 예상치 못한 트러블, 잘못 박힌 못처럼 튀어나오는 무례한 손님 등 변수와의 싸움이 초보 사장님을 기다리고 있다. 머릿속에 사장님의 얼굴에 내 얼굴을 대입시켜 봤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마스크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사장, 진짜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