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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02. 2023

스웩은 없어도 수액은 있는 날

통증이 보내는 멈추라는 신호

부처님은 하필 왜 이럴 때 오신 걸까? 난생처음 부처님을 원망했다. 2주째, 목을 면도칼로 찢는 듯한 고통을 안겨준 인후염에 시달렸다. 진료받고, 약을 먹어도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물과 죽으로 겨우 연명하던 내게 더 가혹한 시련이 몰아쳤다. 부처님 오신 날이 낀 연휴 시작 전,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싶었는데 잇몸이 붓고, 혀의 둘레 그대로 두둘두둘 혓바늘이 돋았다. 평소에도 좀 무리한다 싶으면 혀부터 반응한다. 그래봤자 서너 개였다. 하지만 이번엔 스케일이 달랐다. 혓바늘이 장악한 내 혀는 거의 톱니바퀴 수준이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기진맥진인데 입천장, 볼 안쪽, 목으로 넘어가는 곳까지 수포가 올라왔다. 입천장을 혀로 쓸어 보면 올록볼록 엠보싱 화장지 같았다. 매운 거, 짠 거, 신 거, 뜨거운 것까지 모든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고문 같은 고통을 안겨줬다. 죽은커녕 침도 겨우 삼키는 상태. 아무래도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거 같아 연휴가 시작되기 전 병원으로 달려갔다. 최근 몇 주째 얼굴을 보고 있는 이비인후과 담당의는 내 목과 입안 상태를 살피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러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의사 입에서 나왔다. 병명은 인후염에 이은 구내염. 원인은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약화. 일단 주사 한 대 맞고 가고 더 센 약으로 처방하겠으니 먹으며 경과를 보잔다. 대한민국 의료인들의 능력을 믿는 나는 약 한 무더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은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게 해치워 버리고 침대에 뻗었다. 커튼 하나 여닫을 힘이 없어 처음 있던 그대로 겨울잠 자는 곰처럼 캄캄한 방에서 죽은 듯이 잤다. 자다 일어나 겨우 죽 몇 수저를 뜨고 약을 먹은 후 다시 자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황금 같은 연휴를 이불과 물아일체 상태로 보냈다. 바이러스 놈들도 눈치가 있으면 이 정도 노력에 떨어져 나가 주면 좋으련만 연휴가 끝날 때쯤에는 이러다 진짜 몸이 땅 안으로 꺼질 거 같은 상태가 됐다.      


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된 화요일, 눈 뜨자마자 눈곱만 겨우 떼고 병원으로 향했다. 내 몰골을 본 선생님은 말했다.     


이게...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러죠?      


그걸 알면 제가 왜 여기까지 기어 왔을까요? 의사 양반의 고장 난 라디오 같은 반복 멘트를 끊으며 수액이라도 놔 달라고 말했다. 입으로 뭘 삼킬 수가 없으니 화낼 힘도 없었다. 주사실로 나를 데려간 간호사는 두 종류의 액체가 든 팩을 내 몸에 연결했다. 편안하게 쉬고 계시면 한 시간 정도면 다 내려갈 거라고 했다. 핸드폰은 종류별 메신저와 메일이 사채 이자처럼 쌓였고, 각기 다른 알람이 불협화음을 뽐내며 아우성쳤다. 나 없어도 세상은 물론 잘 돌아간다. 알아서 돌아가라고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몇 분 못 참고 다시 눈이 떠졌다. 똑똑똑.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오가며 상태를 체크하던 간호사는 그런 나를 힐긋 보더니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그때 내가 감감무소식이니 그 1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가 울렸다. 상황을 설명하고 한 시간 후쯤 연락드린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가며 상황을 보고 들은 간호사는 수액이 조금 더 빨리 들어가도록 레버를 조절해 줬다. 이런 상황이 흔한 걸까? 딱히 원한 건 아니었는데, 알아서 해주니 고마웠다. 하지만 곧 문제가 나타났다.


수액이 들어가는 바늘이 꽂힌 왼쪽 팔뚝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하던 통증이 뻐근하다 못해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마침 온 간호사에게 상태를 설명했다.    

  

혈관통이네요. 빨리 맞으셔야 할 거 같아서 투여 속도를 좀 높였더니 그런가 봐요.

원래 속도로 다시 낮출게요. 이 속도면 한 시간 반 후에 끝날 거 같네요.

수액 다 맞으시고도 집에 가서 통증이 계속되면 따뜻한 수건으로 감싸고 마사지해 주세요.

      

음식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고, 내 혈관의 상태보다 무리하게 수액을 투여하면 혈관통이 온다. 인후염 때문에 생긴 면도칼로 만든 주스를 마시는 듯한 고통도, 입안을 초토화시킨 구내염과 혓바늘이 몰고 온 통증도 마찬가지였다. 무리하다 생긴 결과다. 통증은 속도 조절을 하라는 일종의 멈추라는 신호다. 뭐가 급하다고,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내 그릇에 넘치는 일을 부여잡고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수액의 효과로 한결 생기가 돌기 시작한 몸. 하지만 마음은 이전보다 더 너덜너덜했다. 몸을 이 꼴로 만든 멍청한 내가 어이없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쓰는 메일과 메신저 인사말에 건강을 잘 챙기라는 당부로 끝을 맺었는데 정작 나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이 정도에서 멈출 수 있어 다행이다. 아프고 괴로웠던 그 통증이 없었다면 나는 무식하게 계속 몸을 혹사하며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을 게 뻔했다. 이쯤에서 브레이크를 잡아 준 ‘통증’이 오히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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