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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28. 2023

상추가 쌓이는 계절

상추 지옥에서 발견한 걱정 해소법

요가를 마치고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식탁 위에 놓인 낯선 비닐봉지였다. 저 부피와 실루엣이라면 설마... 예민한 촉이 발동했다. 아니길 바라는 마음을 걸음에 담아 조심조심 봉지 곁으로 다가갔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어김없이 상추였다. 봉지 안에는 약간의 깻잎과 잘록한 허리가 휜 오이 몇 개도 함께 들어 있었지만 상추는 월등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출처를 묻는 내 질문에 엄마는 형사에게 취조당하는 용의자처럼 잔뜩 주눅 든 눈빛으로 말했다.      


옆 동네 최 씨 아줌마 있잖아. 텃밭에서 땄다고 가져가라고 해서...     


한 동네에서 오래 산 엄마는 대문 밖을 나서는 순간, 선거철 정치인처럼 이웃과 인사를 하느라 주위를 360도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이웃들이 먼저 건넨 인사를 놓칠까 두려워 사방을 부지런히 돌아본다.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건 부담 없이 주고받는 일에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딱히 뭘 주지 않아도 넘치는 게 있으면 대문을 넘어 들어온다. 뜨끈한 부침개나 팥죽이 올 때도 있고, 묵은 김치 처리를 위해 만든 매운 만두가 도착할 때도 있다.     


요즘은 상추가 단골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상추가 집에 당도한다. 생산지도, 생산자도 각기 다르다. 이웃 혹은 지인 아니면 먼 친척까지... 텃밭 혹은 주말농장, 아니면 베란다의 스티로폼 박스 출신 상추다. 꽃대가 올라오고 장마를 앞두고 빗물에 잎이 녹아내리기 전에 부지런히 수확한 상추였다. 전문 농사꾼은 아니고 소일거리 삼아 흙을 일구고 쌈 채소나 방울토마토, 애호박, 고추를 키운다. 그 사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 상추는 골칫거리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 누구라도 붙잡고 상추를 주려고 한다. 상추 지옥문이 열린 거다.      


우리 가족이 염소가 아닌 이상 들어오는 상추를 묵히지 않고 소진하기란 불가능한 양이다. 상추로 태어나 냉장고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끝내 음식으로 신분 상승하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간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런 상추가 안쓰러워 먹고 또 먹었다. 끼니마다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뿌려 샐러드로 먹고, 잘게 썰어 순살 양념게장을 얹어 비빔밥으로 먹었다. 겉절이로 무쳐 먹고, 닭가슴살을 쌈 싸 먹었다. 매끼 숨 쉬듯 먹어도 돌아서면 상추가 쌓인다. 냉장고의 상추는 사라지기는커녕 무한 증식하고 있다.      


집에 상추가 넘쳐도 거절하지 못해 냉장고에 상추 쌓기가 취미인 엄마를 닮아서일까? 냉장고엔 상추가 쌓이고, 머릿속엔 걱정이 쌓인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걸 안다고 해서 상추처럼 늘어나는 걱정을 차단하긴 어렵다. 걱정이 제철을 맞은 난 요즘 일단 저질러 놓은 일, 어차피 해야 할 일, 마무리 짓지 못한 일, 팽개쳐둔 일에 파묻혀 지낸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맘 편히 느긋하게 멍 때릴 시간도 없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뭔가를 계속 해치우기 바쁘다. 이 고비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지친 나를 도닥여 가며, 급한 불을 꺼 준다는 비타민제를 씹어 삼키며 쌓인 일을 없애 버린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돌아서면 끝나야 하는데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시간에 쫓겨 넘긴 일들은 고스란히 걱정이라는 이자를 낳았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생각한다. 한 번만 더 볼 여유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괜찮은 결과물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가스레인지에서는 찌개가 끓어 넘치고, 휴대전화는 불이 나도록 울리고, 누군가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산다. 하루에도 몇 번의 마감이 있고, 주간 마감과 월간 마감도 있다. 밤도 없고, 주말도 없이 메일과 톡이 사채 이자처럼 쌓인다.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걱정에 젖어 있고 싶지 않아, 얼른 다른 일로 도망간다. 그러니 설익은 일을 넘기고 내빼기를 반복하면서 또 걱정이 쌓인다. 대체 이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어쩌면 답은 상추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 장마철을 앞두고 상추 꽃대가 올라왔다는 건 곧 꽃이 피고 머지않아 열매를 맺을 거라는 신호다. 연했던 잎은 두꺼워지고 질겨져 인간에게 외면받을 상태지만, 상추의 일생을 놓고 봤을 때는 분명 결정적인 시간이다. 일과 걱정이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시즌이 지나면 나 역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거다. 그러니 장마 전, 상추를 따는 것처럼 걱정 묵힐 게 아니라 잘 수확해 놔야 제대로 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노지에서 자란 상추라 그런지 하우스 출신 상추와 달리 제법 오래 아삭함을 유지했다. 닭 가슴살 상추쌈을 우걱우걱 씹으며 걱정도 함께 씹어 삼켰다. 조만간 필 꽃과 열매를 상상하며 허한 마음과 뱃속을 상추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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