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좋아하는 걸 좋아해야지
얼마 전, 엄마가 며칠 여행을 가시며 아빠의 식사를 챙기는 임무를 넘겨 받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종종거리며 된장찌개를 끓이고, 새우전을 부쳤다. 식사를 마치고,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넣은 후 물을 뿌렸다. 평소처럼 그릇이 물기가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사이 전기 포트에 물을 담았다. 아빠의 최애 후식, 믹스커피를 만들려는 나를 아빠가 막아섰다.
아니, 커피 안 마실래.
밥 먹는 건 잊어도 커피 마시는 건 잊지 않았던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해외로 오래 여행을 떠날 때는 믹스커피 뭉텅이를 잘 챙겼는지부터 묻던 아빠가 왜 이러시는 걸까? 커피 떨어지는 걸 쌀 떨어지는 것보다 무섭게 여기던 분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혹 어디 아프시기라도 한 걸까? 싶어 무슨 이유인지 물었다. 놀란 나와 달리 아빠는 오히려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했다.
그냥. 별로 안 당겨서. 요즘 뭐든 그래.
생각해 보니 아빠가 요즘 달랐다. 여름이면 냉장고 문이 닳도록 여닫으며 아이스크림을 꺼내 드시던 일도 없었다. 식사 후 어김없이 하는 ‘수박 좀 내와라.’라는 말도 들어 본 지 오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만 75세 아빠의 기력은 뚝뚝 떨어진다. 허리도 굽고, 귀도 먹먹하다. 동작도 둔하고, 자주 멍하다. 입맛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좋아하던 것들이 하나둘 시큰둥해진다. 그저 내 방에서도 소리가 들릴 만큼 볼륨을 크게 키운 TV 앞에서 멀뚱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일이다.
아빠에게 믹스커피가 있다면 내게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있다. 집에서는 딱히 생각이 안 나는데 밖에만 나가면 최소 1일 1잔 이상 마신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일할 때나, 잠깐 시간이 떴을 때, 산책길 반환점에 얼음이 찰랑이는 큼직한 아.아가 있다. 자리까지 가는 그 시간을 못 기다리고 받아 드는 순간 걸어가며 일단 한 모금 들이켠다. 아직 얼음의 찬 기운이 퍼지기 전이라 약간은 미지근한 아.아를 들이키면 몸 구석구석에 커피가 퍼지는 게 느껴진다. 사방으로 퍼지는 커피를 느낄 때면 내가 살아 있음을 체감한다. 그리고 오늘도 이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나 좋아하는 걸 누리면서 제법 잘살고 있구나’ 싶어 위안받는다.
마시면 이가 시려서, 속이 불편해서, 머리가 아파서처럼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아예 취향이 바뀌어서 아.아를 멀리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다. 아빠처럼 기력이 떨어지고, 몸의 감각들이 둔해져 좋아하던 것들에 시큰둥해지는 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끝을 맺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오는 순간이다. 그날을 위해 난 뭘 해야 할까? 답은 단순하다. 언젠가 맞이할 그 마지막 날이 오기 전까지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 된다. 후회나 미련이 없을 만큼 아낌없이 좋아하면 그만이다. 그래야 ‘끝’이라는 글자 앞에 당당히 돌아설 수 있을 테니까. 구질구질하게 바짓가랑이 붙잡고 울고불고해 봤자 이미 버스는 떠났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아.아 한잔을 감사한 마음으로 마신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쫓기는 마음 없이 편안하게 아.아를 들이킨다. 덜컥 내일 당장 취향이 바뀌고,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 아아를 못 마신다 해도 아쉬울 게 없다. 나의 수많은 지난날, 아아와 함께했던 온전한 휴식 시간을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