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흉터를 남기고
하루아침에 불주먹이 됐다. 번화가를 정신 팔고 걷다가 입간판에 손등이 부딪쳤다. 주먹을 꽉 쥐면 톡 튀어나오는 손등에서 검지가 이어지는 딱 그 부분이 찢어졌다. 세게 부딪히지 않아 이 정도 충격이면 멍 정도 들겠지 생각했다. 자세히 보니 까진 살갗이 조금씩 보라색으로 변하더니 그 사이로 새빨간 피가 스며 나왔다. 깜짝 놀란 아이가 굳은 듯 멈춰 있다가 울음이 터지는 것처럼 충격에 얼어붙은 손등에 시간차를 두고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주 오래전 심야버스 막차 안 취객들이 싸우다 더 덩치가 컸던 승객의 입가에 피가 터진 걸 본 이후 폭죽처럼 피가 튀는 장면을 ‘생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통증보다 이렇게 놀람이 먼저였다. 인간의 가죽이 이토록 연약하다니... 영화고 드라마고 싸우고 피 흘리는 장면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살면서도 그 장면들의 1/10 수준의 작은 상처인데도 얼떨떨했다. 미디어 속 주인공의 생사가 오가는 치명상보다 현실 속 내 손등의 작은 상처가 더 아팠다. 가방을 뒤져 휴지를 꺼내 지혈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다행히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집에 가서 처치할 생각으로 스며 올라오는 피를 휴지로 꾹 누르고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 소독하고 상처 연고를 바르고 아쿠아 밴드를 붙였다. 수시로 손을 씻기에 상처에 물이 들어가지 않는 게 중요했다. 연고와 피가 뒤섞인 흔적이 얇은 밴드 위로 비쳤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밴드가 손에 맞게 붙도록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피가 더 뿜어져 나왔다. 손등은 쓰리지만 주먹 위에 큼직한 밴드를 붙인 꼴을 보니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 구역의 싸움짱이 된 것 같아 혼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싸움을 극도로 싫어한다. 불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는데 나는 싸움이 났다는 조짐이 보이면 숨기 바빴다. 집에서도, 일할 때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하다못해 길거리에서도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 생기면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겁 많은 달팽이처럼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싸움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분위기가 냉랭하면 더 불편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속없는 사람처럼 숙이고 들어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게 편했다. 멋진 대의를 위한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이기적인 평화주의자였다. 불건강한 내 심신 안정을 위한 선택이었다.
길거리 입간판에 혼자 손을 부딪힌 것처럼 누가 시비를 건 것도 아니고 물리적 충돌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상처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싸운 상대가 있는 게 아니라 부주의함에 혼자 부딪혀 생긴 상처는 오래 아물지 않는다. 생각이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입간판을 원망하다가 생각 끝에는 화살이 결국 나를 향한다. 거리의 거치물들을 보지 못하고 부주의하게 걸었던 나를 탓한다. 입간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와서 부딪힌 건 나니까. 그렇게 시간을 되돌릴 능력도 없으면서 과거 속에서 자책하고, 후회하며 나를 갉아먹는다.
고독한 불주먹 싸움꾼이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밴드를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상처는 아물어 간다. 이렇게 상처는 언젠가 아문다. 찢어진 살갗에는 피가 멈추고 딱지가 생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딱지도 떨어지고 언제 상처가 났냐 싶게 멀쩡해질 거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다. 보통 피부에 비해 찢어진 그 모양대로 새롭게 돋아난 피부는 색깔이 다르다. 좀 더 희고 선명하다. 울퉁불퉁해진 상처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상처가 하는 말이 들린다. 누가 싸움을 걸어오지 않더라도 나의 부주의함이 상처를 만들 수도 있다고. 그러니 그렇게 생긴 상처라면 왜 상처가 생겼는지 원인을 파고들기보다는 부지런히 소독하고 약을 발라 상처를 잘 아물도록 보듬고, 또 상처가 생기지 않게 주의하라고. 부주의함이 만든 상처는 훈장이 될 순 없지만 인생의 실수 방지 버튼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