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n 25. 2024

냉소는 얼마나 쉬운가?

냉소에 대처하는 자세

글을 쓰며 살고 책도 몇 권 냈으니 누군가의 출간 소식은 귀에 크게 들린다. 비슷한 모양의 고민을 하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눈을 활짝 뜨고 지켜본다. 얼마 전, <본인이 출간에 관심 있고, 책을 내기 위해 이런 노력 중이다>라고 쓴 글을 본 적 있다. 그 글 아래로 이런 댓글이 달렸다.      


책은 개나 소나 내냐?     


흔한 패턴이다. 댓글의 주인공은 역시나 익명의 비공개 계정이다. 온라인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악플이었다. 이제는 그 어떤 타격감도 주지 않고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닳고 닳은 댓글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나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글쓴이를 향한 댓글은 부메랑처럼 내게도 날아들었다.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키우던 몇 년 전의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였다.      


그 시절, 책 내고 싶어 하는 개나 소나 중 나는 개일까? 소일까?

덩치가 작으니까 소보다는 개 쪽이 더 어울리겠군.

아니야 강아지 같은 발랄함은 없으니 미련스러운 소 쪽인가?      


전공자도 아니라 전문 지식도 없는데 글을 쓰겠다고, 책 내고 싶다고 까불었다. (정규 교육 국어 과목을 제외하면) 글쓰기를 돈 주고 배운 적도 없으니 근본 없이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쓴다.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나무야 미안해!’라고 외치고 싶을 수도 있는 책을 3권이나 냈다. 내가 아는 사람에게도 또 내가 모르는 사람 눈에도 나는 책 낸다고 깝죽거린 개이거나 소일 거다.      


단순히 글쓰기나 책을 내는 일뿐 아니다. 누군가의 노력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다. 이룬 결과를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보지 않은 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마치 이솝 우화 속 “저 포도는 분명 셔서 맛이 없을 거야”라고 말하고 돌아서는 여우처럼. 말 한마디로 어렵게 용기 낸 사람의 의지와 멘털을 가루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사람은 선의에도 걸려 넘어질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러니 냉소는 얼마나 빛의 속도로 사람을 자빠뜨릴까?      

 

무언가 새로운 걸 할 때는 생각보다 낯이 두꺼워야 한다. 그 뻔뻔함의 속에는 그 어떤 평가도 감수할 단단한 마음과 무반응의 지루함을 견뎌낸 지구력이 포함되어 있다. 쓰리고 아픈 말이 귓가를 스치고 속을 뒤집어 놔도 휘둘리지 않고 귀 막고, 눈 감고 뚜벅뚜벅 가는 사람이 보통 결과를 얻는다.

      

냉소는 쉽다. 결과를 얻는 건 어렵다. 냉소는 편하고, 노력은 힘들다. 바라는 결과를 얻으면 좋겠지만 원하는 결과가 아니어도 망한 게 아니다.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 생긴다. 생이 끝나지 않고 살아가는 한 완벽한 실패는 없다.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

읽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왜 써?

오래 해도 살도 안 빠지는 요가를 왜 해?

영상으로 요약된 거 보면 되지 시간 아깝게 책은 왜 읽어?

딱히 반응도 없는데 해봤자 뭐 해?      


냉소에 젖다 못해 절여져 있던 시절, 나를 지배했던 생각이다. 내 가능성을 셀프재단하고, 미래의 나를 우울로 멱살 잡고 끌어들이는 줄도 모르고 냉소에 취해 살았다. ‘성공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냉소는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었다. 눕고 싶고, 한없이 뒹굴거리고 싶은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 건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가 아니다. 남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가 변하는 게 느껴져서다. 냉소에 취해 사는 사람을 만날 때면 딱히 말을 얹지 않는다. 냉소 충만한 사람의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으니까.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생각한다.      


네 의견 잘 들었고요.

저는 제 갈 길 갈게요.

할 일이 많아서 이만.      

매거진의 이전글 식자재 마트에서 길을 잃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