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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09. 2024

상처가 생겼다니 완전 럭키비키잖아

네잎클로버 찾기와 글쓰기의 공통점


산책하다 일명 토끼풀, 클로버가 보이면 느슨하게 풀어놓았던 정신을 단단히 붙잡는다. 얼마 전 <네잎클로버를 찾는 법>에 관한 글을 본 후 생긴 버릇이다. 이론을 공부했으니 실전에 적용해야 하는 법. 내 손으로 직접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동공을 최대로 열고 토끼풀 군락을 뒤졌다. 토끼풀은 도심 속 공원, 화단, 길가에도 널리고 널린 흔한 잡초다. 하지만 잎이 하나 더 달린 네잎클로버는 흔치 않다. 평균 약 1/5000 확률로 존재하는 네잎클로버. 행운의 상징인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네잎클로버 찾기 달인’이 말한 팁들을 떠올리며 세 잎 클로버 사이를 뒤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머! 네잎클로버 찾기는
글 쓰는 거랑 비슷하잖아?

[ 비 온 후 화창한 날씨에 찾을 확률이 높다 ]     

해가 저물면 잎을 오므리는 클로버의 특성상 해가 쨍하게 있을 때 발견하기 쉽다. 특히 비가 내린 후 하루, 이틀이 지나고 화창한 날이 되면 클로버는 쑥쑥 자란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사는 게 행복하고 즐거우면 쓰고 싶은 게 없다. 기쁨에 취해 글 쓸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시련의 폭풍 속을 헤맨다고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괴로우니 뭘 쓸 에너지가 없다.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다. 한바탕 괴로움의 폭풍우 속을 빠져나와 심신이 고요해지면 그제야 쓸 수 있다. 그래서 예고도 없이 닥치는 실패나 시련을 마주하면 오히려 슬쩍 웃음이 난다. 글감이 생겼구나 싶어서. 앞으로 가시밭길이 펼쳐지겠지만 어쨌든 끝은 있고, 이 괴로운 순간을 글로 쓸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견딜 수 있다.      


[ 중심보다 가장자리에 있을 확률이 높다 ]     

<네잎클로버를 찾는 법>을 읽기 전까지는 토끼풀을 보면 일단 시선이 가운데로 직진했다. 희귀한 거니까 왜인지 센터에 있을 거 같아서 중심을 공략했다. 그런데 네잎클로버는 센터 멤버가 아니었다. 달인의 말은 내 편견을 깨부쉈다. 보통 세 잎인 클로버는 일시적인 돌연변이로 네 갈래의 잎이 나온다.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네잎클로버가 생기기도 한다. ‘높게 ‘가 아닌 ‘넓게 ‘ 퍼지며 자라는 습성을 가진 클로버는 가장자리로 갈수록 밟힐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면 생장점에 상처가 생겨 스트레스를 받아 네 잎이 생긴다. 가장자리 즉 내 발과 가까운 곳에 네잎클로버가 있다. 글감도 마찬가지다. 손에 닿지도 않은 먼 이야기 보다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이 좋은 글감이 된다. 공원 산책로나 길 가장자리처럼 사람이나 동물의 발길이 쉽게 닿는 가까운 곳에 네잎클로버가 많듯, 거창하고 대단한 글보다 누구나 겪어봤음 직한 글이 공감 얻기 쉽다.      


[ 하나가 있으면 그 주변에 또 있을 확률이 높다 ]     

네잎클로버를 하나 발견했다면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기 쉽다. 유전적 성질의 영향일 수도 있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네잎클로버 근처에 또 다른 네잎클로버가 있듯 글을 쓰면 또 다른 글을 쓰기 쉽다. A라는 것에 글을 쓰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A라는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B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A-1이 떠오른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쓰기를 하게 된다. 멈추면 보이지 아무것도 않지만 느리게라도, 계속 쓰다 보면 뭐라도 쓸 수 있다.      




달인의 가르침을 착실히 실천하니 어렵지 않게 네잎클로버를 찾았다. 매일 가던 길인데도 눈에 띄지 않았던 네잎클로버가 보였다. 당장이라도 꺾어서 손에 쥐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손을 뻗었다가 냉큼 거뒀다. 대신 핸드폰 카메라 줌을 당겨 사진을 찍었다. 그 자리에 있어야 또 누군가 발견하고 잠시나마 기뻐할 테니까.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 글을 썼다. 날마다 글쓰기 싫어서 몸서리친다. 꾸준히 글을 쓰니 언제 글감이 바닥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 산다. 네입클로버가 준 행운은 다른 게 아니었다. 글태기(글쓰기+권태기)에 내글구려병까지 중증 상태라 밉고 또 지겨운 ’글쓰기‘를 다시 돌아볼 기회를 줬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세잎 클로버가 생장점에 생긴 상처에서 잎을 하나 더 뽑아 올려 네잎클로버가 되듯, 지금 내 고민과 걱정은 언젠가 새로운 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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