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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11. 2018

더 이상 여의도에 벚꽃을 보러 가지 않는 이유

 한때 나도  벚꽃 놀이를 하러 온 군중 속 한 사람이었다


괜히 사람 마음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벚꽃 매직


이맘때면 뉴스고 신문이고 어디나 활짝 핀 벚꽃 얘기가 넘쳐 난다. 진해에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이고, 여의도가 언제부터 축제고, 잠실 석촌 호수엔 언제 가야 절정에 이른 벚꽃을 볼 수 있다고... 나도 그랬다. 그 무수한 벚꽃 놀이를 하러 온 군중 속 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피해, 쓰레기를 피해 사진 찍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여의도

벚꽃 필 때가 되면 손꼽아 갈 날을 기다렸다. 여의도 근방에서 일할 때는 밤늦게 야근을 마치고 지인들과 작당 모의를 했다. 축제 기간이라 차량 통제를 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도로 위에서 돗자리도 없이 와인을 땄다. 잔도 마땅한 게 없어서 그냥 입으로 돌려 마셨다. 꽃에 취해, 와인에 취해 객기를 부리던 그 시각은 새벽 2시였다.     

시선집중 되고 싶다면 역방향으로 돌면 됩니다  

석촌 호수에 벚꽃이 한창이라는 소식에 지인들과 스케줄을 맞춰 날짜를 잡는다. 대륙의 이동 못지않은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호수 한 바퀴를 돌며 사진을 찍은 후에는 야구장으로 향하는 게 전형적인 코스다. 벚꽃 놀이 후 출출해진 배는 야구장의 주전부리로 채운다. 그 재미에 지인들과는 벚꽃의 꽃말이 “야구장 가자“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톡하고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탱글탱글한 석호정 벚꽃(좌)과 벚꽃비 내리기 직전의 남산 산책로 밤벚꽃(우)

남산에 벚꽃이 필 때쯤에는 여벌 겉옷을 하나 더 챙겨 사람들을 헤치고 그곳으로 향한다. 석호정 국궁장. 나름 산이라고 평지와는 또 다르게 좀 더 쌀쌀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사람들도 없는 편이고 무엇보다 손에 닿는 거리에 커다란 벚꽃 뭉치(?)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맘때쯤, 좋아하는 사람들과 벚꽃을 보러 갈 때면 <나만의 벚꽃 아지트>란 타이틀로 석호정으로 향하곤 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매해 봄이면 벚꽃 명소라는 곳을 찾아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다. 일본 애니메이션 한 장면처럼 머리 위로 벚꽃비가 흩날리는 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길어야 일주일, 그 짧은 봄의 절정을 지나치면 다음 해가 올 때까지 1년 내내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런데 그렇게 벚꽃 명소에 다녀오면 즐거움도 컸지만 지치기도 했다. 넘치는 사람들로 인해 더 좋은 자리 사수를 위해 눈치싸움을 해야 했다. 인생 샷 사수를 위해 어깨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넘치는 사람만큼 넘치는 쓰레기, 무질서와 혼돈이 가득한 그곳이 싫증 나기 시작했다. 즐거웠던 봄 숙제가, 어느새 지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새 나에게 벚꽃의 꽃말은 “쓰레기”가 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참 많이 지쳐 있었다. 사람에, 일에, 사는 것에. 그렇게 한 동안 사람 넘쳐나는 벚꽃 명소를 멀리 했다.     


올 해 중랑천의 봄


집 근처 중랑천변을 걷는 운동을 시작한 후, 봄이 되면 중랑천 변에도 꽤 많은 벚꽃 나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칠 때는 잘 몰랐던 사실이다. 몇 해가 지나고 나니 가녀리던 벚꽃 나무들은 꽤 탐스러운 벚꽃을 피워 냈다. 언젠가부터는 굳이 벚꽃 명소라는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그곳들에 버금가는 벚꽃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에 치이지도, 쓰레기에 뒤덮이지도 않고 오롯이 조용히 그 해의 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20대의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진리인 줄 알았다. 요즘 뜬다 하는 곳, 유명하다는 것은 직접 가보고 맛보고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남들이 인정하는 크고 대단한 것들을 쫓아다니느라 정작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 내가 진정 편해지는 것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무지했다. 정말 내가 필요할 때,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시답잖은 말들을 쏟아내는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가족, 내 사람들인 것이다.      

 

한 해 한 해 점점 더 집순이가 되는 이유, 인간관계가 더더욱 단조로워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부터 모든 것의 양보다 질, 개수보다 밀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내 주변에 뭐가 있는지 좀 더 천천히 돌아보게 됐다. 결국 내 것이 안 되는 크고 화려한 것들을 쫓아다니느라 내 사람들에게 소홀했던 나를 반성했다. "때"가 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매년 때가 되면 벚꽃은 그 자리에서 피고 또 지진다.  하지만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고, 기다려준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벚꽃이 준 깨달음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난 더 이상 여의도도, 석촌호수도, 남산도, 안양천도 가지 않는다. 올해도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말이다. 대신 집에서 도보 10분이면 닿는 중랑천의 흐드러진 벚꽃길을 만끽한다. 사랑하는 내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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