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고통을 눌러보는 중입니다
오늘도 도망치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침대 위에 껌딱지처럼 달라붙고 싶지만 늘어진 몸을 일으켜 요가 센터로 향했다. 일주일에 몇 번 없는 하타 수업이 있는 날이니까. 근육도 에너지도 별로 없는 편이라 아쉬탕가, 빈야사, 밸런스, 이넥스, 테라피 등 다양한 수업 중 최애는 ‘하타 요가‘다. 하타는 올바른 아사나(자세) 하나하나를 길고 정확하게 유지하는 스타일이다. 현실의 복잡하고 짜증 나는 상황들은 잠시 벗어 두고 요가 수업을 받는 내내 집중한다. 천천히 선생님의 시범을 따라 동작을 하면서 긴 호흡으로 들이마시고 내 쉰다. 콧잔등에 땀이 삐질삐질 나고, 온몸 구석구석이 뻐근해진다. 앉은 상태로 양다리를 앞으로 쭉 펴고 허리를 굽혀 이마가 정강이에 닿도록 하는 전굴 자세를 하는 중이었다.
“고통이 있다는 건 곧 그 부분이 본인의 약한 지점이라는 신호예요.
그럴 땐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마주해 보세요.
고통이 있는 그곳에서 충분히 머무르세요.”
정강이 뒤쪽, 오금이 찌릿찌릿해 슬쩍 힘을 풀고 고통을 외면하려는 찰나였다. 내 마음을 스캔이라도 한 걸까? 선생님의 말이 근무태만 중이던 양심을 콕 찔렀다. 크게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시고 몸을 이완한 후 조금 더 깊기 허리를 숙여 허벅지 위에 배를 올렸다. 굽었던 오금이 시원하게 펴졌다. 동시에 뻐근함이 뒷벅지까지 퍼졌다. 충분한 호흡과 함께 느긋하게 이완하니 찌릿찌릿했던 오금은 아프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에 용기를 내 실천했더니 불편했던 동작들이 한결 쉬워졌다. 샌드위치처럼 허벅지 위에 배를 밀착시킨 상태로 생각했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통증을 피하지 않는 거구나.’
피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준 것도 있지만, 안 그런 것도 많았다. 나는 늘 도망쳤고, 잊힌 줄 알았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아프게 되살아났다. 슬픔도, 후회도, 상처도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은 척한다고 사라지진 않았다. 마음 어딘가엔 늘 그 통증이 남아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뭉친 근육처럼. 한 번 곧게 펴려면 아프다.
결국 마주해야 했다. 고개 돌리지 말고,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서 들여다봐야 했다. 고통은 늘 거기 있었다. 내가 외면했을 뿐. 어떤 일은 꺼내 보면 괜찮고, 어떤 일은 여전히 그대로다. 시간이 아니라, 내가 외면한 채 그냥 둔 감정들이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처럼, 삶에서도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한 번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무는 연습. 피하지 않고, 천천히 숨 쉬면서.
“여기, 아직 안 괜찮아.”
내 안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갓 뽑은 가래떡처럼 말랑한 상태로 센터를 나서는데 뺨에 닿는 밤공기가 후끈하고도 상쾌했다. 몸은 말큰말큰해졌고, 마음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나는 앞으로도 아플 거다. 상처받고, 실망하고, 또 후회하겠지.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덜 도망치고 싶다. 조금은 더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보고 싶다. 숨을 고르고, 몸을 낮추고, 나를 다시 마주하는 연습. 그 시간을 보낸 후 어쩌면 조금 더 단단한 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