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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변잡기

유튜브가 러닝을 망쳤을까?

시작은 유행, 지금은 생활

by 호사


러닝을 시작한 이후, 내 발톱은 하나둘 사라졌다. 멍들고, 빠지고, 또 멍들고 곪았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발의 통증이 골반까지 퍼졌다. 결국 재야의 러닝화 피팅 고수를 수소문했다. 어렵게 예약 후 도착한 러너들의 성지. 왕년에 마라톤 선수였다는 사장님은 내 걷고 뛰는 자세를 보곤 매서운 무속인처럼 일갈을 날렸다.


“또 이런 분이네. 요즘 진짜 많아요. 유튜브의 폐해라고나 할까?”

“네??”

“그렇게 앞발로 착지하다가 다친 분이 얼마나 많은데요.”


한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저으며 중얼댔다.


“진짜 유튜브가 다 망쳐놨다니까…”


러닝 유튜버 따라 하다 망가진 초심자들을 만나는 일은 이 고수에겐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난 억울했다. 비슷한 시간에 뛰는 러닝 선배들을 보고 ‘대충 저런 느낌?’ 하며 따라 했을 뿐이었다. 요즘 유행이 골프에서 테니스, 그리고 러닝으로 넘어갔다고 했던가? 나도 모르게 그 흐름에 편승했는지 모른다. 10년 넘게 다닌 중랑천 산책로에서 이렇게 많은 러너를 체감하게 된 건 불과 몇 해 전부터다.


그들은 뛰고 있었다. 선수처럼 속력을 내는 사람도 많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뛰는 크루도 있었고, 느긋하게 슬로우 러닝을 하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모호한 슬로우 러닝족을 보며 나도 그 정도는 뛸 수 있을 거 같았다. 마침, TV에서 슬로우 러닝에 관한 다큐를 보고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나도 러닝 열풍에 슬쩍 발가락을 얹었다.


그럴싸한 장비도 기록도 신경 쓸 것 없고 신던 운동화를 신고 나가서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됐다.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던 시절, 러닝처럼 나 혼자 시작해서 나 혼자 끝낼 수 있는 운동이 딱이었다. 살기 위해 뛰었다. 멋진 자세도, 기록도 관심 없었다. 망가지기 전에 그냥 한 걸음 더 떼 보자는 마음뿐이다.


러닝을 하면 몸이 보내는 신호에 민감해진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어딘가 무리하고 있다고. 숨이 턱 막히고, 관절들이 욱신거리고, 발톱이 멍들고 빠질 때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욕심내면 더 망가진다는 걸 러닝이 알려줬다. 러닝을 통해 안정적인 호흡으로 천천히 달리는 법을 배우고, 무릎이 아니라 엉덩이로 뛰는 법을 익히고, 잘 쉬는 것도 운동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조금씩 괜찮아졌다. 아직도 뛸 땐 여기저기 아프고, 발톱은 다시 자라나길 기다리는 중이지만 숨은 덜 차고 마음은 한결 가볍다. 나는 발톱 몇 개를 잃는 대신 조금의 체력과 조금의 자신감, 그리고 쉴 때도 불안하지 않은 마음을 얻었다. 오늘도 러닝화 끈을 조이며 생각한다.


‘이만하면 괜찮은 거래 아닌가?‘


놀랍게도 처음엔 주말 한두 번 억지로 나가던 게 이젠 일주일 내내 안 뛰면 몸이 뻐근하고 마음이 불편하다. 체력이 바닥났던 시절엔 생각도 못 했던 일이 이제는 생활이 되어 있었다. 뭣도 모르고 해 쨍할 때 달렸다가 지옥불을 맛봤다. 이젠 새벽 5시 해 뜰 무렵이나 해가 진 밤 8시 이후에야 나선다. 밤새고 잠자리에 들던 시간에 러닝화 끈을 묶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내가 신기하고, 가끔은 자랑스럽다.


고수가 “유튜브가 다 망쳤다”며 혀를 차던 말에도 일부분 공감한다. 의사, 약사, 한의사, 변호사, 헬스트레이너, 부동산 사장님, 미용사까지... 유튜브에 범람하는 잘못된 정보를 들고 와서 “그 말 맞아요? 유튜브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던데?”라며 전문가들의 속을 뒤집는 일이 일상이니까.


하지만 다른 분야는 몰라도 러닝에 관해서만큼은, 나는 유튜브의 공도 인정하고 싶다. 그 영상들이 없었다면 러닝 붐도 없었을 테고, 붐이 없었다면 이렇게 쪼랩인 내가 뛰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러닝화계의 화타를 찾아갈 이유도 없었을 거다. 유튜브 덕에 시작했지만, 유튜브 때문에 다친 사람도 있다. 그 둘 사이에서 나도 요령껏 배워가는 중이다.


유튜브가 러닝 붐에 기름을 부은 건 확실하다. 유튜브를 보고 뛰기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 덕에 도로 위 러너들이 우후죽순 늘었고, 나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푹 빠졌고, 숨도 차고, 발톱도 잃었지만 대신 체력과 멘털을 주웠다. 뛰는 맛에 눈뜬 것도, 건강해진 것도 결국… 유튜브가 다 망친 덕분이다. 아니, 망친 척하면서 잘 굴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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