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겨 맞아 더 쫄깃해진 인생
전남 진도의 작은 섬, 관매도의 여름은 돌미역 따기로 분주하다. 거친 물살과 무더위에도 등 굽은 어르신들이 미끄러운 바위를 오르내리는 이유가 있다. 관매도 미역이 유독 맛있다고 소문나 다른 지역 미역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세찬 해류와 파도에 시달리며 자란 관매도 돌미역. 고난의 시간을 버텨낸 덕분에 조직이 치밀하고 두텁게 자라 쫄깃한 식감과 풍부한 영양을 품게 된다... 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중이었다. 수확을 마친 주민들이 모여 식사를 하던 중 마을 이장님이 갓 딴 돌미역에 구운 삼겹살에 생양파를 얹은 ‘관매도식 삼합’을 한입에 넣는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파도처럼 몰아치는 시련과 고비 앞에서
나는 어떻게 버텨왔지?
나는 오래도록 ‘개복치 인간’이었다.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일에도 벌벌 떨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별것 아닌 실수를 해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지구 종말이 다가오는 블록버스터가 펼쳐졌다. 체력이 약하니 마음을 추스를 힘조차 없었고, 단단하지 못한 마음은 쉽게 부러졌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식은 ‘도망’이었다. 비련의 주인공이 된 듯 방에 틀어박혀 이불속에 웅크린 채 걱정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시간 말고는 내 편이 없다’는 생각으로, 그저 시간의 힘에 의지해 고통이 옅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관매도 돌미역은 개복치 인간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렇게 버텼는데 넌 어때?‘라고. 돌미역은 도망치지 않았다. 파도가 머리채를 흔들어도, 해류가 몸을 때려도 묵묵히 버텼다. 그 끝에 얻은 건 ‘쫄깃함’이라는 보상이었다. 꾸준한 근력 운동으로 근육이 단단해지듯 한시도 잠잠할 리 없는 바닷속에서 떠내려가지 않고 버틴 끝에 탄탄한 조직감과 깊은 맛을 얻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세상은 두들겨 패는 방식으로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나를 패고, 다시 패고, 또 패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관매도 돌미역을 떠올려 본다. 그 시련이 내 삶을 더 치밀하게, 더 맛있게 만들어 주는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
“인생이 쫄깃해지려고 나를 패는 거라면, 기꺼이 맞아주자.”
물론 여전히 나는 나약하다. 파도에 휩쓸릴까 봐, 거센 물살에 몸이 부서질까 봐 두렵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작정 이불을 뒤집어쓰고 도망치지는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 그 작은 버팀조차 언젠가 내 삶의 맛을 더 깊게 만들어 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시련이 내게 준 건 상처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나를 단단하게 조여주는 끈이 되었고,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인생은 끝없이 몰아치는 파도를 잠시 멈추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그 물살 속에서 어떻게 숨을 고르고, 어떻게 버틸지를 알려준다. 쓰러져 울던 순간도, 겨우겨우 버틴 순간도 다 합쳐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결국 나는 돌미역처럼 바닷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셈이다. 휘청거리고, 때로는 찢기더라도 완전히 뽑히지는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버틴 게 아닐까.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 고비조차도 지나간 뒤,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때는 진짜 힘들었지만, 덕분에 지금은 더 단단하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이란 결국 그런 반복의 연속일 테니까. 고통은 지금을 삼키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가 근육이 되어 내 안에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속으로 중얼거린다.
“패시겠다면, 감사히 맞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