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인사의 힘
“백화점도 아니고 최저시급 받고 일하는 알바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시는 거 아닌가요?”
편의점이나 빵집, 카페, 식당 등 요즘 어딜 가든 대다수 직원이 무표정하게 계산만 한다는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댓글창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도 불편하다’며 공감하는 사람, ‘월급에 미소는 불포함’이라며 현실을 지적하는 사람, ‘인사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계산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사람… 각자 생각이 달랐다.
댓글을 훑다 보니 얼마 전 가르쳤던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17살 학생이 떠올랐다. 음료 만드는 법, 포장하는 법, 뒷정리하는 법까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한발 물러서 지켜봤다. 마침 손님이 들어와 주문을 받고, 음료가 만들어져 손님에게 전달했고, 손님은 가게를 나갔다. 군데군데 아쉬움은 있었지만 매뉴얼대로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바로 ‘인사’.
처음 들어올 때 반갑게 맞는 인사, 음료를 건넬 때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 떠날 때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 내겐 너무 당연해 따로 말하지 않았던 부분이 그 친구 머릿속에는 아예 없었다. 주의를 주고, 인사의 중요성을 말했지만 끝내 입은 열리지 않았다. 생애 첫 알바라기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인사를 가르쳐도 하지 않는 모습에 의아했다. 당시엔 그저 개인 성향의 문제라고 여겼지만 댓글 창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혹시 요즘 세대에게 인사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닌 걸까? 귀찮고,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형식일 뿐인 걸까?
사실 나도 첫 알바 때 인사가 제일 힘들었다. 대학생 시절, 동네 번화가의 주얼리숍에서 저녁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였다. 고가의 금은 장신구부터 유아용 머리핀까지 파는 가게였다. 첫날 가장 어려운 건 계산도, 진상 손님도 아니었다. 바로 인사였다.
아… 어… 서… 오오세… 요…
극 내향인의 목소리는 개미 울음소리 같았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는데, 결국 직원 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얘~ 그렇게 인사하면 손님이 들어오겠니?
처음엔 누구나 창피해.
근데 못한다고 안 해 버릇하면 평생 못해.
알바든 뭐든 인사는 기본이야.
그냥 눈 딱 감고 크게 외쳐봐!”
그 말에 용기를 내 하루하루 연습했다. 개미 목소리가 염소 울음소리가 되고, 일주일쯤 지나니 낭랑한 꾀꼬리 소리가 됐다. 어느 순간 문이 열리는 기척만 들려도 자동으로 “어서 오세요!”가 튀어나왔다. 휴지 파는 잡상인이든, 전도하러 온 종교인이든, 구걸하는 사람이든 일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은 손님이었다. 손님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아도, 나는 인사해야 했다. 인사는 아르바이트생인 내 몫이었으니까.
그렇게 인사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인사 잘한다고 칭찬하는 손님이 있었고, 하나만 사려던 걸 두 개 집어 가는 손님도 있었다. 인사 잘하니 스카우트해 가고 싶다는 손님도 있었다. 인사가 매출은 물론 내 인생도 바꿀 수도 있겠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회에 발을 들이고 보니 인사의 힘은 더 분명해졌다. 방송국 언저리에서 수많은 사람을 보며 깨달았다. 인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와 인성을 가늠하는 최소한의 척도였다. 매니저들은 계약서에 잉크도 안 마른 신인을 데려와 인사부터 시켰다. 그 짧은 순간에 눈도장이라도 찍기 위해서였다. 신인이어도 성의 없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초특급 스타가 되어도 스태프 한 명 한 명에게 고개 숙이며 다정히 인사하는 사람도 많았다. 인사 잘한다고 욕먹는 사람은 없었다. 반대로 인사를 소홀히 하다가 이미지가 추락하고, 인기와 함께 삶도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은 여럿 봤다. 인사의 온도와 성의에서 그 사람의 ‘열심‘을 가늠했다. 인사는 그만큼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저시급에 인사 값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게 알바에게 정당한 요구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인사는 돈이 들지 않는 최고의 자기 PR이자,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걸.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존중이자 가장 빠른 신뢰 쌓기 도구라는 걸. 또 하루 온도를 바꾸는 작은 버튼이자, 배려의 가장 작은 단위라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사를 건넨다. 누가 받아주든 말든, 인사는 내 몫이니까. 작은 인사가 결국 내 삶을 바꾸어왔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