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누군가에게는 장난, 누군가에게는 상처

콩알탄 냄새에 살아난 20년 전 아찔한 기억

by 호사


저녁 러닝을 위해 집을 나서는데, 옆집 대문 앞이 소란스러웠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아이 셋이 대문 틈에 뭔가를 밀어 넣더니 낄낄 웃으며 달아났다. 곧 타닥! 타닥! 소리와 함께 화약 냄새가 퍼졌다.


아, 콩알탄이구나!


피어오르는 냄새와 함께 오래 묻어 둔 기억이 튀어 올랐다. 20여 년 전, 저녁을 먹고 TV를 보며 뒹굴거리던 중 집 안에서 탄 냄새가 났다. 주방 불은 꺼져 있었고, 냄새는 바깥에서 창문 안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진원지를 확인하자 집 뒤편 창고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길이 막 시작된 순간이었다.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새로 지어 입주한 지 몇 년 안 된 집이자 부모님의 피땀이 어린 역사적인 첫 '내 집’이 타고 있었다. 수없이 이사를 다니며 세입자로 살아온 부모님이 어렵게 마련한 처음이자 마지막 자가 주택. 화마가 우리의 보금자리를 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부모님은 손을 벌벌 떨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언니와 나는 급히 119에 신고했다. 곧 소방차가 도착해 불은 큰 피해 없이 잡혔다.


며칠 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학생들이 창고 뒤로 던진 담배꽁초가 원인이었다. 집 근처에 학교와 학원이 많아 오가는 청소년들이 많은데, 그중 몇몇의 장난이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뻔했다. 큰 피해 없이 끝났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날의 공포는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그래서일까. 콩알탄의 불씨 하나가 옆집을 태우고, 또 우리 집까지 번질 수 있다는 상상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퍼졌다. 망상이라고 치부하기엔, 경험이 이미 증거였다. 심장은 1분에 5분 3초쯤 전력 질주할 때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아이들은 멀리 가지 않았다. 한 블록 뒤 원룸 앞에서 또다시 장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다가갔다.


“얘들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네?”


“아까 저 윗집 대문에 콩알탄 넣은 거 다 봤어.”


“… 여긴 저희 집인데요.”


“누구 집이든 위험한 장난은 하면 안 돼.

사진도 찍어뒀어(사실 안 찍었다).

입은 티셔츠 보니까 ○○유소년 FC 다니네?

또 그러면 그쪽에 연락한다. 얼른 들어가.”


사색이 된 아이들을 뒤로하고 중랑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장난이,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상처를 건드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