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붕어빵의 속도

속도의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이유

by 호사


등산의 묘미는 뭘까? 정복했다는 기쁨? 칼로리를 태웠다는 즐거움? 내 한계를 넘어섰다는 희열? 물론 그런 걸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하산푸드’다. 산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내려가서 먹을 음식점을 검색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용마산+아차산 연계 산행을 했던 그날도 목표는 분명했다. 아차산의 명물이라는 핫도그를 곁들여 먹는 떡볶이집. 여러 후기와 보도를 통해 명성을 익히 들어왔고 떡볶이 애호가라면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아차산을 몇 번 갔는데도 인연이 없었다. 체중 관리를 위해 자극적인 음식을 한동안 피했지만 오랜만의 치팅데이라는 명분이 생겼다. 빈속 방지를 위해 용마산 정상에서 삶은 달걀 두 개를 까먹으며 떡볶이를 영접할 준비를 마쳤다. 완벽한 컨디션으로 맞이하려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이날의 등산은 떡볶이를 위한 ‘받침대’ 일뿐이었다.

드디어 영접한 아차산 떡볶이는 예상과 달랐다. 불다 만 밀떡, 단맛은 적고 정수리에 땀이 삐져나오는 얼얼한 매운맛. 내 입에는 떡볶이는 떡볶이 맛, 핫도그는 핫도그 맛. 정직 그 자체였다. 손님들의 표정을 살피니 나와 다르게 모두 만족스러워 보였다. 대부분 성인이었지만 떡볶이를 먹는 표정은 학교 다니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내게는 그 ‘추억 보정’이 없었다. 그래서 외지인의 입에는 그저 기교 없이 그냥 매운 옛날 떡볶이 맛일 뿐이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차산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핫한 붕어빵 성지를 찾았다.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던 곳이었는데 얼마 전 맛잘알 스타가 SNS에 언급하는 바람에 전국구 붕어빵 맛집으로 등극했다. 후기들을 보며 굳이 붕어빵 먹으려고 줄까지 서야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들어가는 팥의 양과 가격(4개에 3,000원), 시스루 붕어빵이라고 불릴 만큼 속이 훤히 보이는 얇은 피 사진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니 금방 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걸어갔다. 저 멀리 지도 앱이 가리킨 곳에는 긴 줄이 보였다. ‘그래 저기구나!’ 확신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마을버스가 오가고 은행, 병원이 있는 평범한 도롯가의 노점. 그 앞에 이미 10명 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10명 정도면 한 2~30분 정도면 살 수 있겠다 싶어 끝에 줄을 섰다.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30분이 지나도록 좀처럼 줄은 줄지 않았다. 어디 얼마나 맛있길래? 시간 만수르는 오기가 생겼다.

이게 다 떡볶이 탓이다. 평소라면 미련 없이 돌아설 텐데 아차산에서 2전 2패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차산에게 ‘패배의 땅‘이란 불명예를 안겨 줄 수 없었다. 인내의 시간이 서서히 저물고 드디어 내가 주문할 차례. 내 배 상태로는 2개면 충분하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팥으로만 8개를 주문했다. 아마 앞선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까? 그렇게 기다리고 몇 개만 사긴 아까우니 살 수 있는 최대한을 사는 듯했다. 그러니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줄은 더 길어지는 악순환이었다.

기다리면서 붕어빵 사장님의 행동을 관찰했다. 느릿느릿하지만 잔 동작 없이 차곡차곡 자기 일을 했다. 한 판에 5개짜리 틀 2개가 쉼 없이 돌아간다. 한 번에 구울 수 있는 최대 수량은 10개다. 바닥에 반죽을 깔고 1/3 정도 익었을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반죽과 소가 들어갈 빈 통을 번갈아 채우고, 주변을 정리한다. 반죽이 익으면 어린이 주먹 크기의 팥을 넣고 위에 다시 반죽을 덮고 철판 뚜껑을 닫는다. 몇 분 후 반죽이 노릇하게 익으면 테두리에 빈 곳을 채우듯 얇게 반죽을 한 번 더 뿌려 붕어빵 ’ 날개’를 만든다. 그 날개까지 다 익어야 완성이다. 보통 붕어빵에 비해 크기는 1.5배, 팥 양은 2배에 가까운 붕어빵. 크기도 크고 팥도 왕창 들어가는 만큼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가네요.”


무심코 이 말이 튀어나왔다. 말없이 붕어빵을 굽던 사장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서 허리도 못 펴고 바쁘게 굽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거 탄 건 아닌데 팔기는 좀 그래서...”


이 말과 함께 줄 선 손님들 몰래 ‘오버쿡’된 붕어빵을 나와 바로 뒤 순서 손님께 슬쩍 건넸다. 줄이 길어 눈치 보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익히는 시간과 순서를 한 치도 흐트러뜨리지 않는 사장님의 모습.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준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보상이었다. 한입 베어 문 순간,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맛이 느껴졌다. 바삭한 날개는 거의 와플 같았고, 과하게 달지 않은 팥의 맛은 깊고 진했다. 밀가루 냄새 없이 고소한 맛은 쌀가루 반죽 덕이라고 했다.


“줄이 길면 조급해지지 않으세요?”

내가 물었다.


“남들 눈치 보느라 서두르다가

덜 익힌 걸 드리면 어떡해요.

내가 중심을 잡고 속도를 지켜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뜨거운 팥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마음 한가운데로 묵직한 무언가 훅하고 내려갔다.


나는 얼마나 내 속도를 지키며 살았을까?

남들이 조급하게 보챈다고, 기다리게 하는 게 눈치 보인다고, 내가 원하는 ‘익은 상태’가 되기 전에 많은 것들을 서둘러 내놓았다. 많은 것들은 시간이 걸려야 맛이 난다. 어떤 건 서두르면 모양부터 망가진다. 남의 속도와 상관없이 내 리듬을 지켜야 한다. 사장님은 붕어빵을 굽고 있었지만 결국 내가 배운 건 ‘속도의 주권’이었다. 덜 익은 마음을 밀어붙이지 않고, 다 익은 순간까지 기다릴 줄 아는 태도. 아차산 붕어빵 가게 앞에서 내 삶의 속도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 드디어 내 품에 들어온 8개의 붕어빵. 품에 안고 집에 가는 내내 사장님의 확신에 찬 표정으로 하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중심을 잡고 속도를 지켜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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