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과소평가한 죄로 선고받은 30km 달리기
“다들 올해 제일 좋았던 일이 뭐였어요?”
한국어가 유창한 일본인 친구가 물었다. 그날 처음 만난 사이였다. 만난 지 채 두 시간도 안 된 자리. 어색함을 와인을 홀짝이며 달래던 중이었다. 훅 들어온 질문에 내향인의 사고 회로가 잠시 멈췄다. 돌아가며 각자의 ‘올해의 잘한 일’을 말하는 동안, 나는 속으로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올해 제일 좋았던 일이… 뭐였더라.'
요즘 나름의 원칙, ‘길게 생각하지 않기’를 적용해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을 그대로 꺼냈다.
“30km 뛴 거요.”
전주 주말, 태어나 처음으로 30km를 뛰었다. 불과 7개월 전까지만 해도 10km만 쉬지 않고 뛰면 소원이 없겠다던 사람이었다. 물론 속도는 느렸고, 기록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대회도 아니었고, 결승선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대신 중년의 무릎과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천천히 뛰었다.
LSD(Long Slow Distance). 장거리 러닝에서 흔히 쓰이는 훈련 방식이다. 말 그대로 느린 속도로 오래 달리는 방법이다. 심폐 기능과 지구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라 마라톤 준비 과정에서 기본으로 활용된다. 풀코스를 뛸 계획은 없었지만, 나는 그저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10km가 전부였던 사람이 15km, 22km, 25km를 거쳐 30km에 도달했다. 인생 최장 거리였다.
모든 시작은 지난 5월, 중랑천이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달리기를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은 날 목표는 5km. 학창 시절을 빼고는 달리기를 해본 적 없었고, 쫓기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해 늘 미리 출발하는 경기도민으로 살아왔다. 숨이 차오를 것 같으면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날의 고비는 1km 지점부터 왔다. 다리는 천근만근, 심장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그래도 첫날부터 포기하면 다시는 안 나올 것 같았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자르자는 심정으로 거의 다리를 끌다시피 5km를 채웠다. 요가와 등산으로 쌓아둔 기초 체력이 덕분이었다. 몸은 멀쩡했고, 기분은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
'아, 이 맛에 달리는 거구나.'
그날 이후 꾸준히 뛰었다. 숙련자들이 보면 걷는 것처럼 보일 속도로 빠르지 않게. 대신 멈추지 않고 달렸다. 속도 대신 횟수와 거리를 기준으로 삼았다. 나는 대회에 나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5km 다음 목표는 10km였다. 보통 대회를 위해서는 1시간 이내 완주가 기준이지만, 내 기준은 달랐다. 기록이 아니라 완주였다. 그렇게 6km, 7km, 8km를 거쳐 8월 말, 처음으로 10km를 뛰었다.
'어? 이게 되네?'
그 이후 10km는 일상이 됐다. 하지만 익숙해지자 지루해졌다. 몸이 10km에 적응해 오히려 몸이 무거워졌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오늘 컨디션이면 더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5km를 뛰었고, 그다음엔 거리가 두렵지 않았다. 8월 말 10km가 최장 거리였던 사람이, 12월에 30km를 뛰었다. 30km를 달리고 땀에 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나의 문장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내가 만든 한계에 갇혀 살았었구나.'
나는 평생 자신을 규정하며 살았다.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 10km 이상은 못 뛰는 사람. 낯 가리는 사람, 주목받으면 위축되는 사람, 먼저 다가가지 않는 사람, 지적받으면 사고 회로가 멈추는 사람,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 말이 능숙하지 않은 사람, 회를 못 먹는 사람,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않는 사람 등등
그 정의들은 시멘트벽처럼 단단해서 벗어나려고 하면 세계관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한 번 금이 가자 알게 됐다. 그 틀은 내가 만든 거였고, 누가 깨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야 나올 수 있다는 걸. 달리기를 통해 얻은 건 체력보다 이 사실이었다. 한계를 두지 않으면, 나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2026년의 모토는 이거다.
틀 깨기
부수듯 깨지 않아도 된다. 조금 느슨하게 만들고, 한 발만 바깥으로 내딛는 것. 그걸로도 내 세계는 충분히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