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을 말들 대신 내 가능성을 챙기기
러닝 그거 하면 무릎 나간다던데...
러닝 그거 하면 얼굴 확 늙는다던데...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꾸준히 달리고 있다고 말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말이다. 그게 다 나 걱정해 주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래 뛰었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건, 진짜 뛰는 사람들은 러닝 하니까 이런 점이 좋지 않냐고, 다음에 같이 뛰자고 러닝 동지를 만난 기쁨을 온몸으로 내뿜는다. 그렇게 그들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별말 안 하는데 오히려 안 뛰는 사람들이 더 걱정한다.
꾸준히 뛰어 보니 알겠다. 심각한 부상은 욕심내서 뛰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얼굴에 세월을 정통으로 맞는 노화는 밥 먹고 달리기만 하는 ’달리기에 미친 자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난 스마트 워치도 없고, 기록 단축이나 대회 출전이 목표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을 쪼개 그냥 맛있는 거 더 먹고 싶어서 설렁설렁 달리는 사람일 뿐이다. 다음 끼니에 먹을 메뉴를 생각하면서 뛰는 자에게 그런 걱정은 과분하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해 보지 않고 일단 걱정부터 하는 사람. 여행 싫어 인간이었을 때는 잠자리 바꾸면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 가서 길을 잃거나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두려웠다. 운동 싫어 인간이었을 때는 변변치 않은 실력을 비웃을까 두려웠고, 또 몇 번 하다 그만둘 내가 걱정이었다. 글쓰기 싫어 인간이었을 때는 내 생각을 담은 글을 보고 이것도 글이냐고 욕할 거 같아 무서웠고, 고심해서 쓴 내 글에 악플이 달리면 괴로울 거 같아 걱정했다. 그래서 처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을 때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의 공백이 있다.
물론 여행 가서 소매치기당할 뻔한 적도 있고, 잠을 못 잔 적도 있다. 하지만 안전하게 여행한 날이 더 많았고, 길을 제대로 찾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적이 더 많았다. 운동도 글쓰기도 시작할 때 엉망진창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좋아졌고, 그 성장하는 재미에 빠져 시작하면 꾸준히 하고 있다. 걱정걱정 열매를 배 터지게 삼키고 걱정만 하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싶게 산다.
경험해 봐야 안다.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건 티끌만 한 점에 불과하다는 걸. 직접 경험해 보면 달라지는 게 많다. 힘든 점, 어려운 점을 까맣게 뒤덮을만한 좋은 점, 기쁜 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소한 점에 발목 잡혀 시작조차 못 하는 건 내 가능성의 절반을 잘라내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들의 말까지 다 수납하고 살기에는 준비된 내 마음의 평수가 협소하다.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의 말은 조용히 흘려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신 내 안의 소리에 더 크게 귀 기울여야 한다. 남이 심어준 확신은 쉽게 흔들리지만, 내가 만든 확신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낯선 것과 마주했을 때, 악착같이 좋은 점부터 찾아낸다. 이건 나한테 어떤 점이 좋을 거야라고 나를 향해 끊임없이 주입식 교육을 한다. 결과가 좋았다면 차차 그게 내 운과 실력이 되고, 나빴다면 그것도 하나의 경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