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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16. 2018

나 혼자 간다, 일본의 고기 뷔페

우설(牛舌)을 마음껏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 고기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 커버 이미지와 해당 음식점은 관계 없습니다 ㅜㅜ






여행의 마지막 날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비행기 타는 날을 마지막으로 치지 않는다. 그날은 그간의 짐들을 챙기고, 비행기 타는 시간에 맞게 가는  일만으로 정신이 없고 하루가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항 가기 전날! 그날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진정한 마지막 날이다.


시즈오카 여행의 마지막 '그 날'이 밝았다. 늘 그랬던 대로 나는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에 다시 한번 가기로 한다. 시즈오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식사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고심 끝에 낙점한 곳은 니혼다이라 호텔 런치 뷔페. 전에 후지산을 보며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가 있다기에 찾았다가 홀딱 빠져 버리고 말았다. 뷰도 분위기도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그 호텔의 뷔페는 가성비가 좋다는 후기도 읽었던 터였다. 쇼핑도 별로 하지 않았고, 굳이 아낀 건 아니지만 군것질을 하느라 배가 부르면 적당히 끼니를 패스했기 때문에 수중엔 예상보다 많은 돈이 남아 있었다.   

  

1인 정도야 예약 없이 들어갈 수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오전 11시쯤 호텔에 도착했다. 시즈오카 여행의 마무리를 호텔 뷔페로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토요일 낮의 호텔은 가족모임, 세미나, 결혼식 등 각종 행사로 주차장부터 북적였다. 불길한 기운이 밀려왔다.     


대기 장소에는 지배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힛토리데스(한사람입니다)”.           

   

“요야쿠 나사이 마시타 카(예약하셨습니까)?”-> 여기서 사실 요야쿠(예약)만 알아들음    


“이에...(아니오)“    


지배인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고, 대기자 리스트인지 예약자 리스트인지 빽빽한 일본어가 수기로 적힌 종이를 보여 준다. 그 표정과 분위기를 보니 정확한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뉘앙스상 예약이 꽉 찼다는 의미인 듯싶었다. 기다리겠다고 하니 오늘 런치 두 타임 모두 풀 부킹이라고 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재빨리 발길을 테라스 카페로 옮겼다. 나는 판단도 포기도 빠른 사람이다. 고민이 길면 둘 다 놓치기 마련이다. 넘쳐 나는 사람들에게 명당을 빼앗기기 전에 마지막 후지산이라도 제대로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런치 뷔페는 못 먹었지만 후지산 전망 카페에서 커피와 딸기 케이크를 먹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시즈오카 여행의 마지막 만찬을 삼진 않았다. 대안을 재빨리 찾았기 때문이다.     


나의 목표는 고기 뷔페. 우설(牛舌)을 마음껏 먹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시즈오카 중심가의 고기 뷔페 말고, 현지인들의 사는 평범한 동네의 야키니쿠 집, 규가쿠(牛角)로 향한다. 한국식 고기구이를 일본화한 메뉴인 야키니쿠(燒肉) 전문 체인으로 일본 전역은 물론 미국, 캐나다,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등지에도 지점을 두고 있는 곳이란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무수히 일본을 오갔는데도 야키니쿠는 처음이었다. 타베호다이(무제한) 코스로 마음껏 먹을 생각에 부풀어 30분쯤 되는 거리를 걸어갔다. 먼저 먹은 커피와 케이크를 소화시킬 겸 어떤 전략으로 무제한 야키니쿠를 제압할지 전략을 짜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요일 늦은 오후,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나서인지 큰 매장 안에는 두세 팀 정도만 고기를 굽고 있었다. 분위기는 꼭 패밀리 레스토랑 같았다. <#혼자 #여성 #관광객 #외국인> 네 개의 키워드가 뒤섞인 손님의 등장에 아르바이트생은 동공 지진이 왔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영어로 된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앞서 다녀간 여행자들이 추천한 대로 90분 동안 100가지 종류를 무제한 먹을 수 있는 3680엔짜리 코스를 택했다.     


100가지 안에는 다양한 부위의 고기부터 채소, 반찬, 디저트까지 포함되어 있다. 각 메뉴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고, 태블릿 pc로 주문을 하면 된다. 먼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우설, 호르몬(곱창), 김치, 쌈채소를 주문했다. 곧이어 자그마한 화로와 연장, 고기가 세팅되었다. 내온 양이 워낙 소박해 마음이 급해졌다. 불판이 뜨거워지는 동안 다음에 먹을 고기들을 주문했다. 스테이크, 치즈 퐁듀, 버터를 얹은 고구마튀김, 옥수수와 버섯이 들어 있는 모둠 채소, 기름에 넣은 마늘 등등 메뉴판 속 100가지 메뉴들을 모두 맛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혼밥의 천국, 일본에서도 여성 혼자 고기 뷔페에 왔다는 게 신기한 걸까? 아니면 넓은 테이블 가득 접시를 채운 게 신기했던 걸까? 들어오는 손님 족족 나에게 뜨거운 관심의 눈빛을 보낸다. 그냥 푸드파이터 꿈나무가 트레이닝 중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불판이 적당한 온도로 오르자, 제일 먼저 고대하던 우설을 올렸다. 누군가는 핸드폰 벨소리로 지정하고 싶다는 아름다운 그 소리,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익어간다. 핏기가 가신 우설을 입에 넣었다. 살짝 도는 육향과 부드러운 감촉이 입 안을 감싼다. 궁극의 맛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다. 한국의 고깃집에서 귀한 우설을 한 점 한 점 아껴 먹을 때 와는 또 다른 맛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나 우설 먹었어”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다. 고기 뷔페에 와서 전문점의 퀄리티를 원하는 건 양심 없는 짓이다. 난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도 하지 않았다. 이어 스테이크와 타레소스, 미소 소스 등 각종 일본식 양념으로 맛을 낸 고기들을 맛봤다. 역시나 나쁘지 않다. 딱 대중적인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잡내와 육향이 어렴풋하게 뒤섞인 고기의 맛에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타입이라 낮술을 참느라 꽤 고생했다.      


사실, 고기 뷔페는 처음이다. 하지만 혼자 뷔페를 가는 것이나, 혼자 고기를 굽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90분이라는 시간에 쫓겨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 때문인지 목표치에는 못 미치는 결과를 냈다. 디저트를 먹기 전,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인기 메뉴라는 돌솥 비빔밥도 맛봤다.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한국식 야키니쿠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보니 한국의 맛이 이런 것인가? 하고 막연히 생각할 일본 사람들을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한국에서 정통 일본식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일본 음식을 먹는 우리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겠지?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혼자 고기를 굽는 것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과 단점이 함께 존재한다. 혼자 고기를 구우면 혼자 다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익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혼자 먹을 만큼씩 천천히 구우면 판이 타고, 함께 먹을 때만큼 구우면 고기가 식어 안타까움에 내 속이 탄다. 먹고 싶지 않은 부위 대신 내가 먹고 싶은 부위만 내 맘대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나오는 양을 혼자 다 소화하기란 어렵다. 이것저것 조금씩 맛만 보고 싶은 메뉴들을 남길 수가 없으니 다 먹곤 한다. 개수로 채우고 싶은 욕심을 양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혼자 먹으면 함께 먹을 때에 비해 쉽게 배가 찬다. 중간중간 사진도 찍고, 메뉴판도 탐독하고, 분위기도 즐기지만 대화 없이 고기만 밀어 넣다 보면 금세 위가 가득 차기 때문이다. 반면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 상대방이 채갈까 경쟁하듯 먹다 보면 원래 양보다 많이 먹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식당은 여럿이 우르르 몰려와 수다를 떨며 먹고 마셔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일본까지 가서 굳이 왜 뷔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난 우설도 마음껏 먹고 싶었고, 일본 서민들이 가족 외식하는 모습이 어떨까 궁금했다. 그 목표와 궁금증을 해결하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계산으로 하고 길가로 나와 창 안으로 그 가계 안을 훔쳐봤다. 초등생쯤 보이는 남자아이, 유치원생쯤 되는 여자아이를 데려온 가족이 함께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바다 건너 한국에서 두 분만의 조촐한 식사를 하고 계실 부모님이 생각났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오랜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동네 삼겹살 집이라도 가야겠다는 다짐을 품고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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