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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Apr 26. 2021

아파도 일터로 나가는 게 정상이니?

제 권리도 모르는 그대에게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이전 근무지에서 같이 일한 선배가 나를 측은히 보며 말했다.

지난주에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위장이 뒤틀리는 지경이라 병가를 쓰고 싶은데, 한 번도 써보지를 않아서 어떻게 신청을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아직 한 번도 안 써봤냐고 되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그 후에 나온 말이었다.

나는 그게 참 위로가 되었고, 자신에게 참으로 냉정한 나 스스로에게 단 몇 초지만 속으로 쓰담쓰담을 해준 계기도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껏 십 년이 훨씬 넘도록 한 번도 병가를 안 써봤다. 그렇다고 진짜 팔팔하고 쌩쌩해서냐, 당연히 아니다. 아침에 교감님께 전화해서 아프다고 말하고 하루 쉬면 된다지만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워 꾸역꾸역 학교에 나갔더랬다. 내가 안 나가면 강사를 구해야 하고, 그게 학교에 피해를 주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게 너무나 마음 불편한 집단이니까. 그동안 내 주위의 많은 선후배들도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오지랖을 떨 필요가 있었느냐는 얘기다. 내가 없어도 학교는 잘 돌아가고, 애들은 강사분이 오시면 설렁설렁해서 더 좋아하는데 말이다.


신규 1년 차, 어느 금요일 오후에 집안일로 인해 조퇴를 올렸더니 교감님이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공무원'이 '개인사'로 '근무시간'에 '조퇴'를 쓰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그땐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에다 학교 분위기가 워낙 경직되어 있어 조퇴 신청을 철회했다. 일 다 끝내고 한 시간 일찍 가는 게 그게 잘못인가? 그 과정을 들은 주변 선배들은 "개인사로 조퇴를 하지, 공적인 일로 조퇴를 하나?" 하며 한 마디씩을 하셨다. 아마 나보다 더 어이가 없으셨을 것 같다. 당시 나는 '정말 그런 건가? 내가 잘못한 건가?' 하며 어리바리했었고, 그분들은 이곳의 생태를 다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교사들이 방학이면 제 맘대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줄 알지만 적어도 내 근무지들에선 철저히 법률에 의한 연가사용이어야만 해외여행 신청을 받아줬다(그거 아시는지. 아직도 교사들은 조퇴할 때 조퇴 사유와 조퇴 목적지를 낱낱이 적어 결재를 올려야 한다는 걸). 다른 직장인들과는 달리 우리에겐 방학이 있다는 이유로 학기 중에 연가를 쓸 수 없고 안 쓴 연가에 대한 보상비도 원래부터 없다. 그래서 연가는 방학 때 외국 나갈 때 쓴다. 연수 명목으로 나갈 수도 있는데 그교장 재량이라고 할 수 있. 신규 2년 차, 나와 또 다른 신규교사는 각자 자신의 일정으로 방학 때 해외여행을 신청했는데 때마침 갑자기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 해외여행 자제'라는 방침을 내놨다. 교감님은 우리 둘을 같이 불러 이미 비행기 예매까지 끝내 놓은 것을 다 취소하라고 했다. 우리는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 후 교장님과 동년배이신 선생님이 포함된 한 학년 교사 전체의 해외여행은 몇 마디 호통이 오간 뒤 통과시켜주었다는 것이다. 교감님은 그게 미안했는지 우리 둘을 방과 후에 불러 저녁을 사주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누구의 결혼식에서 이 분을 뵀는데 나를 한쪽으로 부르시더니 "내가 지금 같았더라면 보내줬을 텐데, 그때는 나도 교감이 처음이라 융통성이 없었어요. 미안해요."라고 했다. 두고두고 본인의 과오라고 생각하셨나 보다(생각해보, 지금 LH투기 사태 조사 불똥이 엉뚱하게 교사들 재산공개로 튀어온 것과 똑같다. 월급 백만 원대 후반도 안 되는 신규 교사가 무슨 돈이 있어서 외국 가서 낭비를 하겠소. 그리고 지금도 이 월급으로 무슨 재산이 있겠냐는 말이오!).


이렇게 나는 신규 때부터 교직 사회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많다. 나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 때문에 조퇴 하나도 당당히 못 쓰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웃긴 게, 나처럼 이런 괴상한 경험이 없어도 자신의 권리를 떳떳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회사원들이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 칼퇴하는 것을 눈치 보는 마음과 똑같다. 물론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더라(배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도 많이 민주화가 되었다. 물론 아직 멀긴 했다.  


사람이 제 권리를 어떻게 다 주장하고 살겠는가. 우리가 의무를 100퍼센트 완수하지 못하는 것처럼, 무조건 권리만을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손해 안 보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아플 때 조퇴하거나 일을 하루 쉬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난생처음으로 병가를 썼다(아침에 전화하기 전에 고민하다 심장 터질 뻔).

 

내가 학교를 비관적으로 보는가? 낙관적이지 않는 건 맞다. 왜냐면, 학교의 교사들은 모두들 힘들어하니까. 모이면 학교 밖으로 새 나가지 않을 정도의 하소연들로 겨우 마음을 추스르니까. 현장을 떠나고픈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래도 그 끝에는 '애들 귀엽다, 애들이 이거 좋아하겠다'는 말들로 또 희망을 찾는다. 참 희한하고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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