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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May 14. 2021

승진을 원하는 이가 없는 특이한 회사

가늘고 긴 인생을 추구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지난해 2학기 중반쯤, 교감님이 애타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소문으로 듣지 않아도 누구나 예상하는 일이었다. 인사는 관리자(그동안 봐온 바에 의하면 실무의 총괄은 교감이 다하고, 교장은 결재의 역할이었으므로 분주함은 교감의 것이라 하겠다)의 핵심 의무이고 이맘때면 내년도 부장 인선에 들어가는 시기인데, 특히나 내년 기존 부장들이 전근을 가거나 더는 못하겠다고 선을 그어 몇 자리가 비어 고민많으시단다. 그리고 개인의 자발적 의지든 강압에 의한 것이든 교사들은 다들 능력이 있으니 누그 자리를 맡는다 한들 잘 해내겠지만, "웬만해야 하지.."라며 절대로 못하겠다는  입장들이 강해서 인원 충원은 계속 난항이란다. 신규 때 교감님이 그러셨다. 학교 일은 순진하고 거절 못하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해주시는 게 차라리 좋았다. 사실 그건 우리도 다 아는 얘기데, 그런 걸 상사가 도덕 설교처럼 해대면 '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나.


나는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로서 아직 총명함이 살아있고 의욕도 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내가 아는 모든 20~30대 중 승진을 꿈꾸는 이는 없다. 50대 이상 되시는 선배님들은 '나때도 다했어, 일을 겁먹지 마'하시지만 어려운 임용고시를 통과한 이 똑똑한 젊은 교사들이 일을 몰라서, 꼭 이기적이고 게을러서 안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아실 필요가 있다(옛날과 지금은 교직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니까요). 물론 일찍이 계획을 세워 미래를 준비 중인 사람들도 어딘가에 있겠지만, 그들의 방법이라는 것도 결국은 학교에서 내내 커리어를 쌓는 것보단 장학사로 나가서 교감으로 들어오는 편을 택할 때가 많니 성격이 약간 다르다고 하겠다. 아무튼 취직을 했으면 다음 레벨 진급을 추구하는 게 당연사일텐데 이 집단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원의 직급은 평교사, 교감, 교장 3단계이다(평교사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공모형 제도라는 것도 있긴 하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장교사'는 법적인 공식 직급이 아니라 일종의 명예 타이틀로서 한 달 십만 원도 안 되는 수당을 받고 하는 자리라 장차 승진에 뜻이 없는 사람들은 '안 받고 안 하겠다'라고 부르짖는 게 현실이다. 일반 회사의 '부장'과는 괴리감이 너무 심해 차라리 다른 단어를 고안해내는 게 나을 것 같다. 어쨌든 갈수록 젊은 교사들의 승진 희망률이 낮아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일을 맡게 된 사람들은 임명 확정과 동시에 난처해하는 모습을 그동안 많이 봐왔다.


세상에 태어났으 이름도 남기고 싶고, 왕 이 길에 들어섰으니 우리나라 직업 만족도 1위라는 초등학교 교장의 삶도 다들 궁금할 것이다. 도 '출세'를 갈망한다. 그러나 교사들에게 승진을 향한 동기부여될 만한 게 흔치 않고, 그렇다고 현실만족하는 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적어도 내가 거쳐온 곳에선).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무난하게 가는 것.  다른 직장인들처럼 교사들의 소망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꿈이 없 열정이 없다 할 수 있는가. Oh No! 현실에서 그렇게들 고뇌하며 아가는 게 그놈의 꿈과 열정 때문 아닌가.


신규 첫 해에 교감님은 내게 그러셨다.

"지금 얼마나 좋을 때입니까. 마음먹으면 직업도 바꿀 수 있고."

아무 맥락 없이 툭 뱉었던 그녀의 말에서도 나는 그 고뇌가 느껴졌다. 그분은 치열하게 승진했고, 그래서 빈틈을 용납 못하는 관리자라고 명성이 자자했다. 


'가늘고 길게 or 짧더라도 굵게'

전자로 아예 노선을 확정해버리면 차라리 삶이 단순할 것을, 후자가 자꾸 유혹하니 삶이 재밌어지면서도 내적 갈등이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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