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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May 19. 2021

교사론의 역설

동기가 무엇이든, 교사는 깎아지고 만들어진다

나는 대학교까지 갖고 있는 립 재단의 여고를 나왔 2000년대 초, 당시 우리 학교는 다른 이름난 학교들처럼 심화반이 있었다. 가끔씩 그 반 수업에 소위 일류대에 진학한 언니들이 찾아와 합격 비결 썰을 풀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무 살이 열아홉 살에게 자신의 '인생'을 얘기한 건데 그땐 그게 우리 인생 최고의 재료라 믿고 귀를 쫑긋 세웠다. 어느 날, 교내에서 유명했던 언니가 대학생이 되어 학교에 왔는데 당연히 의대에 간 줄 알았던 그녀는 교대생이 되어 있었다. '너희는 표를 꼭 이루길 바라'라고 했던 그 언니의 착잡한 얼굴, '안타깝다'며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었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이유야 어쨌든) 나도 교대생이 되었다. 내가 알기로 내 학번이 교대 역사상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다. 교육대학교 졸업생의 전공은 '초등교육'으로 모두 같지만 그 안에도 '과'가 있는데 심화전공이라는 명목 아래 국어과, 도덕과, 사회과 등으로 나뉜다. 교대생에게 과는 의미 없지만 그래도 당시 커트라인상 수학과, 영어과가 우위였고 이는 과외 알바를 구할 때 유리하게 작용했다. 나는 수학과였는데, 동기 중에는 의대에 갈 점수임에도  길을 원해서 왔다는 친구도 있고 과학고나 외고 출신도 여럿 있었다. 옛날 2년제 시절(일반 회사 월급의 몇 분의 몇 밖에 안돼서 인기가 없었다는 때), 중초 교사제도(1999년, 2000년 두해 동안 2만 1946명의 초등 교원이 정년단축과 명퇴 급증으로 퇴직하자 7800여 명의 초등교사 부족 현상이 발생해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을 교대에 편입시켜 일정 교육 후 초등교사로 채용함), 교대에 들어가기도 쉽고 졸업하면 100% 교사가 되던 시절  우리나라 초등교원양성의 역사는 여러 모양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예비교사들의 고교 평균성적이 이렇게 높아지고, 임용고시 경쟁률이 이렇게 높아질 줄 예전미처 몰랐지.


"선생님, 당신은   직업을 선택하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이상적인 답은 뻔하다. 내가 질문자라 해도 인자한 미소를 띠며 '오직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문에 대한 즐거움에서'라고 말해주는 교사를 만나길 기대한다. 그러나 교사도 '직업'인지라 각자의 동기가 더해질 수밖에 없는 법. 그리고 이것은 시대의 흐름, 국가의 분위기에 따라 국면에 변화가 생긴다(일례로, IMF 시대를 지나며 교사 선호하는 움직임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도 모두들  안심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셔도 좋을 것 같다. 이들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의무감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 투철하기 때문이다.


교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 성직자론 : 무조건 헌신해서 학생들을 길러내는 사람

- 노동자론 : 일정한 돈을 받고 수업을 하는 사람


교사들은 성직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직을 유지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교사론을 배울 때 우리는 당연하게, 암묵적으로, 또는 세뇌적으로 전자가 옳은 길이라고 배운다. 그리고 스스로도 '교사라면 응당 그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히 '사'가 각광받는 직업이라 이 길을 택한 사람이라도 교사로서의 기본 소양에 대해 다들 감당할 마음이 있으니 들어선 게 아니겠는가. 양심상 처음부터 노동자 쪽으로 가는 이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직장생활은 녹록지 않다. 우리는 일개 생활인이고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니 수많은 갈등을 겪게 되는데, (경험상) 이 대목에서는 노동자론이 아주 큰 위로가 된다. 직장생활은 원래 그런 거야, 하고 넘어갈 합리적 명제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을 다독인 후에는 다시 성직자 쪽으로 슬며시 넘어가 자리를 잡는다.


완벽한 건 없다.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기만 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삶이란 게 뭐 그러겠는가. 우리는 다만 최선을 추구하며 살면 되는 것 같다. 플라톤은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참된 교사'라 했다. 지식은 다들 갖출 만큼 갖췄으니 이젠 지혜에 더 신경 쓰서 일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지혜라는 건 공부의 양, 경력, 나이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는 것. 사고도 확장되어야 하고 현상에 대한 치열한 고민들도 거쳐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일상에 너무 찌들지 않아야 한다. 가능.. 하겠.. 지? 부디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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