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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May 19. 2021

너의 따뜻한 말 한마디

정성이 깃든 피드백은 서로를 살린다.

경력 중 담임이 아닌 교과를 맡은 건 올해가 세 번째다. 지난 두 번은 내 전담교실로 학생들이 찾아왔고, 이번엔 코로나로 인해 학생 이동을 최소화하고자 내가 시간표에 맞춰 학생들을 아가고 있다. 담임을 맡으면 내 반 신경 쓰느라 남의 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까지 신경 쓸 여력도 없고 신경 써서도 안되고, 교사들은 프로로서 교실 안팎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아 실제 어떻게 학급을 운영하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다. 그런데  교사는 여러 반을 수업하고 특히나 지금은 교실 방문까지 하다 보니 생들의 분위기 교정리정돈 상태에서  담임교사의 스타일을 좀 더 '짐작'해볼 수가 있다. 렇다고 동료분에 대 어 판단을 내리는 건 지양한다. 업의 특성상 20대 신규발령자든 60대 퇴직을 앞둔 분이든 우리는 모두 각반의 책임자이고, 각반마다 사정이 다르고, 각자의 가치관이나 업무성향에 따라 학급을 운영하며, 동료끼리는 '평등'한 사이이며, 기본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 선배라고 해도 함부로 말을 놓거나 조언을 하지 않는 게 일종의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내가 신규였을 때 동료장학 간담회 자리였다. 아무리 완벽주의라 해도, 아무리 많이 준비했다 해도 초보는 초보일 텐데 선배들은 내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에, 학년부장님께서 다소 조심스레 말씀을 꺼내셨다.

 

"다 잘해서 더해줄 말은 없고 다만 딱 한 가지만 말해보자면, 수업 중 반말이 섞이는데 그것만 주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 내가 그랬던가.. 내가 그랬지.. 사실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었다. 그 선배님의 조언 이후  수업 중에 반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의 공개수업을 갈지라도 어투에 가장 집중는 편이다.


지난 2010년부터 교원평가가 전면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교사들은 매년 학생, 학부모, 동료, 관리자로부터 점수를 받다. 2020년엔 팬데믹으로 생략되었지, 2021년부터는 정상화될 예정이란다. 개인적인 자부심으로, 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과의 호흡이 좋은 편이었던 것 같다. 누가 참여를 했고 나에게 몇 점을 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숫자와 글에 나는 감사해왔다. 어차피 무기명이고 때는 이미 2학기 후반이니, 나 기분 좋으라고 마음에도 없이 그런 피드백을 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 그런데 이건 지난 학교까지의 얘기다.


새 학교로 발령받은 첫해, 나는 내 성적표에 역시 놀라워했다. 이번엔, 내 학급 운영 스타일은 변함이 없었는데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늘 받아오던 점수가 아닌 그저 무난한 정도였기 때문이다. 참여인원도 적었는데, 비판적인 코멘트가 없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지도. 이것은 나와 너의 케미의 문제로 보기도 그렇고 평가자의 깐깐함을 탓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니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고, 자기 연찬에 더 박차를 가하라는 의미로 보는 게 내게 발전적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전혀 예상 못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는 이 학교의 밥이 제일 맛있는데도 학기초 급식 만족도 조사에서 보통 이하의 점수가 나오는 걸 보고 분위기를 대강 짐작했었고, 말도 안 되는 민원이 쏟아지는 걸 보고 확신했었다. '민원 시범학교'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교사들의 비공식 전문용어로, 민원이 하도 많이 들어오니 그 방면으로 시범학교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는 뜻이다. 나는 작년, 그러니까 13년 차 되던 해에 생애 첫 민원을 받았는데 내용인즉슨, 등교 수업일에 내가 에어컨을 안 틀어줬다고 교무실에 어떤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다들 민감한 시기라 더 철저하게 코로나 방역 수칙에 따랐고 그에 맞춰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 중이었는데 어떤 애가 집에 가서 '더운데 에어컨도 안 틀어줬다' 얘기했었나 보다. '어머니, 에어컨을 안 틀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수업해야 하는 제가 먼저 숨 막혀 죽습니다'라고 내 어이없음을 표명하고 싶었지만 교감님은 익명이라 발신인을 확인할 수 없고 안다 해도 알려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본 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지 말라고 하셨다. '발신번호가 뜰 텐데 모른다고요? 제게 걸려온 문의 혹은 항의 전화인데 왜 그런 것도 안 알려주시는 거죠? 사실무근이라는 피드백은 상대방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오해 속에 1년을 살라고요? 억울함 없이 직장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래도 이런 사소한 것도 담임교사에 대한 신뢰 문제인데 왜 관리자께서 가로막으시는 거죠?' 등 오만가지 물음표가 머릿속을 스쳤지만 민원인들만큼이나 관리자들 또한 쉬운 대화 상대가 아니다.


우리는 다수를 상대하는 직업으로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장을 위해선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고 일이 내 의도와 달리 전개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해도 래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을, 심지어 무례한 어투로 듣게 되면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급기야는, 멘탈을 강화하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훈련에 더욱 에너지를 쓰겠다는 어려운 목표를 세우기에 이른다.


목 통증으로 며칠간 마이크를 썼더니 학생들 몇 명이 나에게 쪽지를 적어 주었다. 내용은 '목이 아프신데 우리를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 우리가 떠들어서 죄송하다, 빨리 나으세요'였다. 아이러니는, 정작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편지를 건넨 이들은 그동안 한 번도 떠든 적 없고 항상 나를 힘나게 해주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수업에 갈 때마다 '오늘도 목 아프세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꼭 있었다. 나는 이내 마이크를 치워버렸다. 착한 애들을 걱정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들에게 들었던 따뜻한 말들은 내 증상을 호전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교사들은 이렇게 단순하다. 말 한마디에 상처 받고, 말 한마디에 감동한다. 부디 오가는 말속에 정겨움이 느껴지는 날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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