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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Aug 18. 2021

꿈의 딜레마

찬란한 미래는 어떻게 올까

찬란한 미래는 자아의 부정으로부터?

안정적인 직장을 팔아요
그대의 젊음과 공평히 바꿉시다.  
빈손으로 돌아갈 건가요  
알아서 하세요 책임을 못 집니다
아직 결정을 못 내리셨군요  
찬란한 노후도 덤으로 드릴게요  
당신도 언젠가 가정을 꾸리면 요긴히 쓰세요  
- 잔나비, <웃어도 될까요> 중


젊음, 그리고 찬란한 노후를 보장하는 안정적인 직장은 등가교환이 가능한가?


나도 일찍이 '교환된' 삶을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젊고, 흘러간 시간 동안 즐겁고 감사한 일 많이 있었다. 노후에 대한 확신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어쨌든 현재까진 통장에 규칙적으로 돈이 들어오고 있고, 나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노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행복이 차오른다. 하지만 내 젊음이 투자된 직장생활에 대해 마냥 만족할 순 없고 미래를 자신할 수도 없다. 서른이 되려면 아직 몇 년이 더 남은 후배가 전직을 꿈꾸며 이번 여름을 뜨겁게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는데, 그녀와 같은 직업으로 열 번의 해를 더 살아온 선배로서 나는 그녀의 바람이 이해가 됐다.


내가 이제껏 학생들에게 들었던 말 중 특히 슬프게 기억되는 게 두 개 있는데, 둘 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의 대답이었다. 우리는 '꿈'과 '직업'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 질문은 장래희망을 묻는 게 아니었는데 21세기에 태어난 '신인류'들이 어째서 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나때처럼 말을 하고 있는가.


첫 번째는 조용한 4학년 여학생으로, 그 학교 학부모는 대부분이 공무원이고 그 아이의 엄마는 구청 공무원이셨다.

- 공무원이요.

/ 공무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떤 일을 하고 싶어?

- 아무거나요.

/ 공무원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 그럼, 00 구청에서 일하는 거요.

/ 혹시 그런 목표가 생긴 특별한 이유가 있니?

- 엄마가 하래요.

 

두 번째는 똑부러진 5학년 여학생으로 그 아이의 엄마는 딸의 완벽주의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다.

- 서울대 가는 거요.

/ 그런 목표가 생긴 특별한 이유가 있니?

- 서울대는 우리나라 최고이고, 그 후에 하버드에 가고 싶어요.

/ 특별히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니?

- 아니요.

/ 입학하는 게 목표야?

- 네.

/ 왜 그러고 싶어?

- 성공하려고요.


나는 신규 때부터 줄곧 학생들에게 '대학 안 가도 된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하는데 "진짜 대학 안 가도 돼요?"라고 되묻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쓰럽다. '렇다'고 하면 "아싸~"하며 좋아하는 모습까지 정말 짠하다.


나는 내 젊음에 대한 사유만으로도 여전히 분주하지만, 어린이들 앞에 서는 사람이라 그런지 내겐 한 가지 과제가 더 주어지는 것 같다. 그들이 결코 어른들이 생각해온 방식대로 자라지 않도록 잔가지들을 쳐내주는 일 말이다. 사람이 꿈만 좇으며 살 순 없지만, 활시위를 멀리 노후로까지 팽창시켜놓고는 미래의 찬란함만을 기다리며 살진 말아야겠다. 수많은 오늘들을 놓치면서 불확실한 내일에 기댄다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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