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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Nov 21. 2021

여긴 내 끝날로부터 어디쯤일까

직원의 부고를 받고

병치레 없이 잠든 사이 하늘로 가는 것. 그런 호상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며 내 노년의 꿈은 바로 그런 '밤새 안녕'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정말 밤새 갑작스레 먼 길을 떠나 주변을 황망케 한다.


근을 해서 메신저를 켜면 항상 공지가 몇 개씩 와있는데 그날은 부고도 하나 끼어있었다. 짧은 메시지였는데 그마저 핵심만 간추려보 'ooo님 돌아가심, oo병원 장례식장, 코로나로 인해 조문은 생략, 조의금은 아래 계좌로 송금'이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남자분 이름이었다. 취업이래 십몇년이 흐른 이날까지 내가 직장에서 받아본 부고는 항상 동료분의 남편, 부모, 시부모, 장인 장모 되시는 분들이었는데 여기엔 그런 수식어가 없었다. 고인이 우리 직원이었던 것이다. 내 직업은 압도적인 여초 집단이라 남직원 자체가 별로 없는데, 메신저 전체 조직도를 다시금 훑어내려 봐도 웬일인지 그 이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두 분 중 한 분이라는 얘기?'

우리는 전 직원이 총 70여 명 되는데 안면은 있지만 말도 안 섞어본, 그러니까 서로 '모르는' 사이가 많다. 본인이 속한 팀이 아닌 이상 타 부서 사람들과는 교류할 일이 거의 없고 조직 내 소통은 거의 메신저로 하므로 우리는 같은 기관근무하면서도 각자의 섬에 산다. 직장이란 게 원래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여기가 일반 회사도 아니고 대규모집단도 아니고 무엇보다 직업 특성을 고려해봤을 때 다소 특이한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직함으로 부르고, 필요하면 그 앞에 이름을 넣어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처음 접한 이름이면, 그분이 메신저로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자 내가 그분을 직함으로만 불러왔다는 말인데 내 추론은 순식간에 결론을 얻었다. 나는 부고 메시지를 보내신 분께 전화를 걸어 이게 누구 성함이냐고 물었고, 내 예상은 맞다.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았다. 출입문을 지키시는 두 분 중 어제 퇴근길에 뵀던 분으로, 불과 16시간 전에 "내일 뵙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눈 터였다. 우리 아버지 또래의 그분이 그동안 아픈 기색이 있으셨거나 최소 어제라도 뭔가 다른 게 느껴졌더라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 너무나도 평소 같던 날이었다. 


업무가 시작되었고, 마음은 계속 동요했다. 인생을 논하기에 아직 건방진 나이지만 삶에 대한 허망물결쳤. 그분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했고, 근무를 했고, 퇴근을 했고, 귀가를 했다. 그리고 새벽에 생을 달리하셨다. 본인은 자신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흘러갈 줄 예상하셨을까. 혹시 이날만큼은  대신 다른 곳에 가고 싶진 않으셨을지.


의 하루를 생각해보았다. 오늘도 힘들게 침대 밖을 나와 간단히 단장을 한 후 찬바람을 뚫고 출근을 했다. 하루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월급쟁이로서, 돈 외에 어떠한 가치도 이 공간에 찾지 못하는 위기 순간에 봉착하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건물 창문엔 사고방지용 안전바가 설치되어 있는데,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낮이라도 흡사 감옥에 있는 것 같다. 장에서 '의미'따위를 찾고자 하는 자체가 잘못이라고들 하지만 그러기엔 물리적, 심리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 아무리 공사 구분이 뚜렷하고 냉철한 사람이라도 글쎄, 그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그저 반복만 되는 매일을 살다 홀연 길을 떠나야 한다면 저 세상에서라도 과연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금만 참으면 돼, 하며 자신을 얼르고 달래며 살던 중이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유서를 미리 써보는 게 삶에 대한 자세를 다잡는데 도움된다고들 하기에 폼 잡아본 적은 있으나 나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버거워 첫 문장도 완성하지 못하고 두 줄을 찍찍 그어버렸다. 내 마지막 날은 어떨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마지막을 누가 감히 그려볼 수 있으랴.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버린 그 사소한 순간이 더 애틋해졌다. 아, 행복은 필사적으로 붙들어야 는구나.


착잡함을 뒤로하고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트레스가 습관이상, 답답한 내 가슴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지금 당장 내 생에 부여된 과제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과업부터 충실히 해내며 하루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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