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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Nov 25. 2023

안 벌면 안 아플까

2023 서울국제교육포럼에 다녀와서

 2024 서울학습연구년 공문을 기다렸었다. 지원자격이 15년 이상이라 해당은 되지만 어차피 선배들에게 밀릴 게 뻔하므로 염두에 두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선배는 나에게 떨어져도 넣어보라고 했고 어제 당장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데 공문은 오늘 도착했고, 나는 공문의 첫 페이지에서 이미 쓴 맛을 보았다. 내가 몰랐던 자격요건이 있던 것이다. 바로 최근 5년간 실근무를 했을 것. 19년에 휴직을 했던 터라 나는 최근 4년간 쌓아온 경력이며 부장점수며 -물론 이 둘의 내 점수는 낮다- 직무연수 학점이 -이것의 내 점수는 높다- 소용없게 됐다. 연구계획서는 잘 쓸 자신 있었는데... 아 맞다. 교장추천서를 받아야 하는데 나는 올해 악성민원에 병가 이슈로 교장을 갑질 신고하기 직전까지 갔던 인물이라 직인을 찍어달라고 하기가 껄끄럽기 그지없다. 올해는 첫 단추부터 마지막 단추까지 망.했.다. 내가 이 연수에 뽑힐 날이 오긴 올까. 우선은 살고 봐야하니 내년엔 무급휴직에 들어가기로.

 

 서이초 사건은 결국 개인사로 종결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며 초등교육현장의 실태다. 흉기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는 웬만해선 범인이 되지 않는다. 자살을 '한' 것인가, '당한' 것인가. 다른 갑질러들은 어느 이름 모를 촉법소년에 의해 신상이 털렸는데 이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어 우리 마음속엔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서울시 교사들은 5년마다 전근을 간다. 휴직했다가 예정일이 아닌 때에 갑자기 복직신청을 해서 다른 학교로 튀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그 학교에서 5년을 채워야 한다. 이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두 가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우선,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새 학교로 가는 것을 이직을 하는 것과 같은 부담을 느낀다. 어차피 새로운 곳에서 만날 사람들도 여기와 다를 바 없을 거고 내가 할 일도 뻔하지만 익숙한 것을 벗어난다는 것은 긴장을 주기 마련이니까. 한편, 적금 만기일이 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듯 새 근무지로 가는 걸 손꼽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원래 직장생활에서 일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괴로움이 큰 데 교사는 일반 직장인보다 더 여러 갈래의 인간 군상과 얽혀있어 포지션이 난해하다. 갑질하는 관리자,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동료교사, 바람에 이는 갈대에도 민원을 넣는 학부모, 자신이 교실의 왕인 학생 등 여기서 뭐 하나만 걸려도 사표는 날마다 가슴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하드웨어적으로 완벽한 이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요즘 초등교사들은 정신과를 옵션으로 끼고산다는 사실을 밖에선 알리가 없다. 내가 신규 때 50대 선배가 그러셨다.

 "너나 나 같은 사람들은 아픈 게 티가 안나는 사람들이니 아프면 안 된다. 꾀병인 줄 안다. 그러니까 진짜로 건강해야 해"

 그렇다. 어느 집단이든 문제는 있겠지만 이 시대의 학교는 내부적인 세대갈등과 사회적인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 속에서 건강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살펴야 한다.


 2023 국제서울교육포럼에 다녀왔다. 올해의 주제는 '학교에서 길을 찾다, 학교 공동체의 건강한 관계 맺기'였고 서울시 교육감을 비롯 본 분야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한 강연과 토론이었다. 틀린 말씀 하나 없는 정석 그대로의 포럼이었다. 그런데 청중으로서 가만 듣고 있자니 끓어오름이 있었다.

 'I'm here to help not to be hurt, 배려 없는 솔직함은 무례입니다, 이것은 제게 상처가 됩니다,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등 인격체 간의 대화라면 당연히 오가야 할 저 말들을 들으려 나는 한 시간이나 지하철을 타고 왔던가. 맞다. 우린 그 말을 못 해 아파 쓰러져왔다. 교육에 관한 담론에서 서두나 말미에 빠지지 않는 대사가 '한국은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다'인데 그 저력이 아직도 건재한지는 모르겠다. 교육의 최전선 일개 병사인 나로선 이 시대 대한민국의 학교가 비정상적이라는 확신 하나만을 건져 집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법적 제도적 보호가 없다면 교사 개인은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인 병가와 휴직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저 공무원으로서 규정에 따라 맺고 끊음을 실천하려 노력할 뿐이다. 이걸 누칼협이라고 비꼬면 할 말이 없다. 다만 내가 현재 자녀가 없는 상태라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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