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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May 26. 2023

한 번 최선을 다하지 말아볼래?

방향성 없는 열심은 독

또래보다 키도 크고 독서량도 많고 학습 수준도 높은 편인, 그러나 늘 시무룩한 표정으로 등교하는 A. 아이 어머니는 학원에서도 그런 얘기를 들으셨단다. 막상 시작하면 잘할 거면서 '꼭 학교/학원을 가야만 하는지, 나 혼자 놀아도 재밌는데 꼭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 하는지'를 실랑이하게 된다며 어머니도 난감해하셨다. 나는 '그래도 8시 58분까지는 등교할 수 있게 조금만 서둘러 주세요'라며 '부탁'드렸다. 1교시가 9시에 시작되는데 시작종보다 늦는 건 서로 민망하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민원이 안 들어올 거라는 보장만 있다면 교실에서 자동응답기를 쓰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열두 번이다. 똑같은 패턴의 대화가 이어지기 때문인데 녹음을 해두고픈 멘트 중 하나가 바로 저 대답이다.

"나무 꼭 두 개 다 해야 돼요? 한 개만 그리면 안 돼요?"

남들 다 제자리에서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색칠할 때 맨 뒷자리에 앉은 A는 맨 앞까지 나와 내게 물었다. 몇 번을 물었다. 5월이 중반을 넘었고 2학년 통합교과 진도는 '봄'을 지나 '여름' 교과서에 이르렀다. 나는 새 계절을 맞은 기분으로 교실 뒤 게시판을 푸르게 물들여보기로 했다. 콘크리트 네모벽 이 몇 평의 공간에 갇힌 -부실공사 때문인지 천장에서는 하루종일 층간소음까지 울려댄다- 우리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나는 우리가 색연필로 억지 초록색을 뿌려서라도 잠시 상쾌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랐다. 나무 뼈대 두 개가 그려진 A4 사이즈 도화지에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크기와 색깔로 잎을 채워보자고 했는데 아이들은 꽤 신나게 색연필, 싸인펜으로 초록과 연두를 쓱쓱 칠했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항상 내 예상을 능가한다. 아이들은 나무 두 그루씩을 가지각색으로 완성했다. 새가 나무 기둥 속이나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고 있고, 땅에는 풀이 빼곡히 자라 있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울긋불긋 꽃이 피어있고 사과도 열려있으며, 나무 아래서 친구와 손을 잡고 있거나 혼자 나무를 감상하고, 시원한 느낌을 나타낸 것이라며 파란색으로 칠해진 나무도 있었다. 먼저 완성한 작품부터 차례로 게시했고 A의 그림을 마지막에 확인했는데 그 아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남들은 '색칠'을 하는데 A는 거의 세밀화를 그린 것이다. 나는 그 정도의 공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자기만의 구상이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무조건 두 개다 완성'을 요구했다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우리 반에는 무엇이든 '대충 빨리' 하는 학생이 있고 무엇이든 '꼼꼼히 느리게' 하는 학생이 있는데, A는 사안에 따라 그 둘을 왔다 갔다 하며 이번처럼 자기가 욕심나는 활동은 철저히 후자에 따른다. 이튿날 아침, A는 본인의 도화지에만 나무가 한 그루인 것을 보고 더 채워 넣겠다 말했고 어제의 것보다 조금 덜 세밀한 수준으로 쉬는 시간 동안 나무 한 그루를 더 완성했다. 나무 44그루가 보이는 교실 벽 한편에서산소가 뿜어 나오는 듯하다. 왁자지껄한 교실에선 그 효과가 덜지만 전교생이 하교한 후 학교에 고요가 찾아오면 연둣빛의 책상과 의자색이 분위기를 더해 그제야 나는 숨이 제대로 쉬어다.


 나는 A가 왜 '한 그루만 하면 안 되냐'며 울상이었는지, 기어코 나머지 반쪽을 완성해 내것까지 곱씹어졌다. 그리고 거기서 내 모습이 보였다. 좋게 말하면 목표의식과 성취의욕이요, 이는 강박과도 무관하지 않다. 것은 곧 내가 괴로워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대쪽 같으면 부러진다고 갈대가 되라지만,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나는 '왜 대충 하지 못했나'하는 자괴감에서 자유하지 못하다. 신은 -종교적 신념은 차치한다- 줄곧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고 했는데 내가 과했던 것인가.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고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고 배웠고 누군가의 성공신화에 감명도 받았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열심은 때로 방향성을 잃게 한다. 물론 열심 자체 만으로 과정 속에서 만족을 얻는다면 그 또한 개인의 지혜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고 뭐든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닌, 내가 가치롭게 여기는 것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힘을 조절할 수 있는 게 진정한 능력일 것이다. 나는 A가 미래에 현명한 어른이 되어 부디 나와 같은 고민의 지점에 닿지 않으면 좋겠다. 나도 남은 생을 보다 현명하게 살고 싶다.

(좌)A가 나중에 완성한 나무                   (우)A의 첫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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