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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Sep 21. 2023

교사는 말이 없다

듣고 싶은 말씀만 해드릴 수밖에요

아침에 학부모상담을 한 건 했다. 학생 어머니는 1학기 때 내가 병가로 나오지 못했던 것의 구체적 사유를 먼저 물으셨고 나는 개인정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상담의 용건은 알림장에 생활지도 사항이 계속 올라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그걸 매일 쓰는 담임은 어떻겠습니까. 저도 진짜 죽을 맛입니다"

각성이 백프로 덜 된 시간이라 그런지 나는 '죽을 맛'이라는 표현을 기어이 뱉어내고야 말았다.

 

공부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 공부시간에 떠들지 않기, 친구가 싫어하는 말 하지 않기, 교실에서 소리 지르지 않기, 실내에서 뛰지 않기, 자기가 쓴 장난감은 스스로 치우기,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기 등


우리 반 알림장 주 내용들이다. 담임교사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표현만 약간씩 다듬을 뿐 어떤 학년에서도 통용되는 문구들인데 저렇게 당연한 말들을 굳이 왜 알림장에 적어 보내는 것인가.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학생들이 직접 기록하면서 스스로 반성 및 내면화를 할 수 있도록 돕고 학급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상황을 인지하도록 함.

둘째, 가정에 학급 상황을 '넌지시' 알리고 가정에서 한 번 더 지도해 주시기를 바람.

셋째, 담임교사의 생활지도 흔적을 남기는 것임.


여기서 첫째와 둘째는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 방점은 결국 셋째에 있다.


현 시스템상 대한민국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자신이 맡은 학생들의 1년 삶을 통째로 짊어지게 된다. 일반 직장인들도 초과근무에, 진상 고객에, 갑질 상사에, 무개념 동료 등으로 괴롭다. 그러나 교사들의 포지션은 매우 특이하다. 자의든 타의든 성직자관이 백프로 무시될 수 없는 환경에다 약자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늘 배려를 제공하는 역할이고 '인간'과 '교육'을 다루므로 눈에 보이는 성과드물다. 정점은, 근무 중(학교일과 중)은 물론 근무처(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민원으로 접수된다는 것이다.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싸워서, 학원에서 다른 학교 학생과 분쟁이 생겨서, 학교에서 자제시키는 각종 온라인활동을 하다가 일이 커져서 등 담임교사의 손은 지구 끝까지 닿아야 할 지경이다. 이에 비하면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하다 무릎에 상처 난 걸 담임 탓이라고 하는 것엔 감사해야겠다. '교내'에서 '일과 중' 일어난 일이니 말이다. 


그때 담임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고 생활지도를 제대로 했었나?


언제 어디서든 날아오는 이 비난과 무한책임의 화살은 현 시스템상 누구든 피할 수 없다. 소위 '유니콘'이라 칭송받는 극소수의 교장, 교감은 교사의 앞뒤 상황을 이해하고 악성 민원 및 문제 학생을 최소한으로나마 대처해 주지만 일반적으로 관리자, 교육지원청(지역청), 교육청(본청), 교육부는 기관의 정체성을 '교육'이 아닌 '서비스'에 두기 때문에 고객만족도 100% 달성을 위해 소속직원에게 법과 규정과 본인의 옛 경험을 -현 교사들의 실정과는 괴리감이 있는- 읊으며 학부모 편에 선다. 교사 지시사항이 아닌데도 수업 중 커터칼로 페트병을 자르다 제 손을 다친 학생의 학부모가 몇 년에 걸쳐 돈을 요구하고 관리자가 교사의 개인정보를 학부모에게 넘겨주는 엄연한 '범죄'가 행해지는 걸 보라. 현장학습 중 버스 사고가 나도 담임교사 책임이고 체육수업 중 발목을 삐끗해도 담임은 '해명'을 해야한다. 교장의 갑질이 명확한데도 신고를 망설이는 건 교사의 기백이 부족함도 이유지만 상부기관에 신고를 해봤자 마땅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해줘' 식의 떼가 통하고 수직적 상명하달 또한 집단의 특징이다 보니 '일개' 구성원인 교사는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체계를 스스로 정립해야 하며 알림장은 이런 측면에서 분쟁 발생 시 담임의 지도 '증거'가 되어준다. 그렇기에 귀찮아도, 시간이 없어도, 기대효과가 없어도 꾸준히 써서 보낼 수밖에 없다.

'교사는 항상 지도했습니다, 교사가 지도를 안 해서 사고가 난 게 아닙니다'


한편 안타깝게도 올해 우리 반은 저학년임에도 알림장을 확인하고 이를 지도에 이용하는 학부모들이 현저히 적으며 심지어 교권침해 및 악성민원이 존재한다. 단, 학습부진아는 없고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높은 것으로 파악되며 학습 및 생활태도 수준은 현저히 낮다. 병가 중 우리 반에 한 번 왔던 시간 강사들 모두가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했단다. 우리 반 학부모가 교무실에 익명으로 넣은 민원 중 하나는 숙제와 시험이 없거나 적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숙제가 많고 시험을 많다고 불만스러워하는 게 대한민국 민원의 표준 아니던가. 인성보다 학업을 훨씬 높은 선상에 두고 있는 가정들을 상대해야 하는 담임교사로서 나는 올해가 끝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생활지도 사항들을 알림장에 나열할 예정이다. 물론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받으면 안 되기에 해당 학부모에게 사실 적시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사안이면 바로 전화 연락을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지경이라 해도 웬만하면 참는다. '우리 애가 그럴 리 없다'는 사고패치는 꽤 흔하게 번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부모와 정확히 의견을 같이하는 관리자들과는 내적 안녕을 고한 바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그래서 나는 내년이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전화상담을 요청하셨던 분의 아이는 나열된 문제 행동에 거의 해당하지 않는 바른생활 학생이었다. 그분의 말투가 공격적이지도 않았고 말에 뼈가 있지도 않았다. 말 한마디로 나락을 갈 수 있는 직업이니만큼 나는 더욱더 특정인 및 특정 사례를 언급할 수 없었고 수화기 건너의 그분이 이 모든 걸 두루뭉술 전할 수밖에 없는 담임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신 것 같아 다행이었다. '선생님 오늘도 고생하세요'라는 인사로 상대방의 발언은 끝이 났다. 나는 상담내용을 기록해 놓고 1교시를 준비하였다.


학부모상담기간이 다가온다. 일 년 내내 수시상담을 하는데 굳이 왜 공식적인 상담기간을 따로 두는지 알 수 없다. 원래 학교란 뭐가 하나 들어왔다 하면 나갈 줄을 모르고 어디서 했다더라 하면 무조건 가져오고 보는 집단으로 이러한 상담 방식 또한 예외가 아닌데 최근엔 현실을 진단하고 2학기 학부모상담기간을 전면취소한 학교들도 있는 걸 보면 어디선간 교육개혁이 아주 조금씩은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잘못한 거 있으면 무섭게 혼내주세요'라는 학부모의 말을 믿고 진짜로 꾸중을 했다간 담임 인생이 진짜로 크게 혼날 수 있는 2023년 현재, 교사들은 오늘도 말을 줄이고 행동을 자제하려고 애쓴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명감으로 당당히 나서라는 허울 좋은 조언은 위험이 닥쳤을 때 독이 된다. 요즘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교사의 말은 '부모님께 상담신청 드리겠다'이다. 교사의 지도가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산다는 게 무엇인지 많은 학부모님들은 모르실 것이다. 만약 학부모님들이 상담기간에 아이에 대한 칭찬만 듣고 오셨더라도 담임교사가 가정에 차마 전하지 못한 메세지가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 어린이들의 성장을 위한 대화가 오가야 하는데 서로 몸을 사리며 말을 주고받는 교육현장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불신의 사회를 살아가는 자들이 감당해야지 어떡하겠는가. 모쪼록 학교와 교사를 여전히 신뢰하시는 학부모님과 학생들께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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