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서이초 선생님은 유명을 달리하셨고
7월 19일, 교사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7월 20일 아침, 나는 교무부장님이 아침마다 보내는 일일교육계획 메시지에 '슬픈 소식'이라는 표현이 포함된 걸 보고 그제야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그 슬픔의 형체를 마주했다.
교사가, 그것도 2년 차가, 그것도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공교육'이라는 침몰하는 배에 이제 막 승선한 청년 중 하나였다. 그녀가 처했던 현실은 기사 몇 줄만으로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상황이 너무 '뻔'했으니까. 내가 16년째 이 현장에 있으며 충실히 쌓아오고 있는 트라우마는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관리자는 방관 또는 질책, 학부모는 안하무인, 학생은 통제불능, 동료는 힘이 없는 게 이 세계의 디폴트인걸. 담임교사는 그 모든 인간군상을 상대해야 한다. 아군은 없다. 타당성에 상관없이 일단 민원이 들어오면 동료도, 상사도, 상위기관도 중립 또는 적이 된다. 그래도 그렇지 억울하게 왜 죽나. 그들을 직접 응징할 힘이 없다면 낱낱이 적어놓고 가지 유서도 없단다. 그냥 사표를 내지 이 무슨 대단한 직업이라고.. 이 기막힌 현실 앞에 나는 막연하게 우울했다.
그날 오후, 소용돌이치기만 하고 어정쩡해있던 내 감정이 분명해졌다. 분노였다. 트리거는 그 학교 가정통신문이었다. 그간 근무지에서 꾸준히 생성되어 온 내 뜨거운 심정들은 일순간 봉인해제되었다.
'본인이 원해서 준 학년이고 업무야. 학교에서 실제로 별일 없었어. 아무튼 학교는 잘못 없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우리 학교도 저런 논조의 통신문을 배부할 것이다. 100퍼센트 확신한다. 학교 밖 사람들이야 학교를 모르니까 그런다 쳐도 교사들을 향해서도 저런 문서로 발송하다니. 초등교사들의 기본 성향이 '순응'이라 부당한 일에도 침묵하는 답답한 집단이긴 하지만 몰라서 가만있는 게 아닌 걸. 교사들은 이 뉴스에 자기 일처럼 고통스러워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의식이나 정의감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나이, 경력, 성별, 지역 등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서이초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어린 교사는 우리에게 불꽃을 쏘아 올려주고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 빛에 각성한 선배들은 아스팔트로 나왔다. 우리들은 꾹꾹 눌러왔던 직업적 '생존권'에 대한 시름을 비로소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종각의 5천 명은 국회 앞 30만 명으로 번졌다. 그러나 그 종착지는 아직도 요원하다.
뜨겁고도 애달프고도 암흑 같은 여름이었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역시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개학 후 우리 반 학부모는 익명으로 교무실에 열 댓가지 민원을 넣었다. 특정학생에 대한 게 아니라 학급운영에 있어 본인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을 주욱 -숙제나 시험이 적다, 학급사진을 안 올린다 등- 나열해 놓은 것이었고 사실과도 달라서 타격감은 없었다. 마치 한밤중에 전화해 술주정하던 몇 년 전 학부모가 떠올랐달까. 그런데 결론적으로 나는 교장실에서 통곡을 하고 나왔다. 내가 하나하나 반박한 것에 대해 관리자가 나를 하나하나 나무란 것이다. 저런 걸 민원이라고 넣는 학부모 수준에 대해서는 연민이 느껴질 -물론 매우 기분 나쁘고 앞으로 '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정도지만 교사에게 분명한 과오가 없음에도 기본 포지션을 '질책'에 두는 윗분들의 행태는 좌절스러웠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조직인가. 울음을 그치고 교장실의 네모 반듯한 창문들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서이초 교사의 심정이 쏟아지는 듯했다. 이 일은 전 학년에 퍼졌고 교사들은 명백한 교권침해이라 말했다. 그러나 관리자는 학부모와 의견을 같이 했다.
9월이 되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7월 그 후로도 여러 교사가 같은 이유로 세상을 떠났고 과거의 사건이 알려졌고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도 많다. 수업방해학생을 분리할 수 있게 뭐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내 근무지에선 아직 아무 말이 없고 우리 반은 여전히 소수의 학생들 때문에 다수의 학생이 피해를 보고 있다. 나는 학생들이 녹음기를 가지고 다님을 받아들인다. 소지품 검사를 할 것도 아니고 발견한다해도 학부모에게 따지기도 애매하고 이미 악성민원인의 수완은 전국민에게 퍼져버렸으니 내가 말을 줄이고 눈을 흐리게 해야지 별 수 있나. 어차피 공동체에는 신뢰가 사라졌다. 교사들은 날마다 스스로 '직무유기'라는 잣대와 싸우고 있다. 문제 행동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정서적 아동학대에 해당된다 하니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학생도 가만 지켜볼 뿐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은 허다하지만 그래도 무의식에 이미 경각심이 새겨져있는지 최후의 선은 지키게 된다. 선량한 학생들과 함께 힘들어하는 게 현재 초등교사들의 최선임을 국민들도 이쯤되면 알겠지. 이것은 공포 스릴러의 시놉시스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현실이다.
인생은 원래 괴롭다. 고충 없는 직업은 없다. 다른 직업군도 자살을 한다. 요즘 정신과 진료는 흔히 받는다. 촌지 받고 애들 쥐어패던 교사들의 역사는 깊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방패로 현 교사들의 절규를 무시하지 마시라. 대한민국 교실 현장은 생각보다 심각하며 시대가 변했다. 실제 교육대학교의 입결 추락과 교사들의 탈출러시는 꾸준하고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게 자명하다. 개인의 직업이야 본인의 선택이니 알 바 아니라 해도 우리나라 공교육의 방향과 질에 대해서는 국민으로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