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거 해
임용을 꿈꾸거나 의원면직을 앞둔 후배를 응원하며
실경력 8년을 향해 가는 후배가 올 1학기 부로 의원면직, 즉 사표를 앞두고 있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에는 진작부터 디데이가 열심히 카운팅 되고 있다. 두근두근 떨리기도 기대도 될 것이다. 꿈꿔는 봤지만 실현해보진 못했기에 나는 그 망망대해로 나가는 기분을 감히 알지 못한다. 그저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바다. 자신의 비전을 위해 결단을 내리는 용기와 도전정신은 그 무엇이든 박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언젠가 논문을 내겠노라며 의원면직을 희망하는 5~15년 차 교사들을 인터뷰하고자 했다. 나도 인터뷰 대상자에 올랐고 나는 그녀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현재 나는 그녀처럼 명확한 데드라인을 가지고 있진 않으나 그녀의 두 배쯤 되는 경력을 지내오는 동안 누구 못지않게 번민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그녀가 이 사정을 속속들이 알진 못해도 자신보다 오래 이 길에 머물고 있는 선배의 얘기를 들어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녀가 꺼낸 한 장 짜리 A4 질문지는 글자로 빼곡했고 제법 좋아 보이는 소니 녹음기는 내 말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교사를 직업으로 택한 이유, 이직을 희망하는 이유 및 분야, 교직에서 받은 스트레스 또는 문제의식을 해소하는 방안, 교직 만족감 향상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점 등 공식적이고도 핵심적인 질문들이 나를 향했고, ‘말하는 것’에 별 주저함이 없는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늘 가득한 탓일까- 나는 그녀의 질문에 별 필터링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러닝타임은 한 시간을 훌쩍 넘었고, 다 마치고 나니 그녀의 질문 몇 가지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겨누었다.
가장 넓게 똬리를 튼 건 나도 줄곧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졌던 교직관에 관해서였다. 직업세계에 들어온 햇수가 거듭될수록 나는 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걸까. 물론 이건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래의 동료들은 대부분 육아휴직을 몇 년씩 또는 주기적으로 쪼개어 들어가 경력에 텀을 둔 상태이고 다른 업종에 관해선 크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것과는 별개로,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직장생활이 보다 간단해지는지 나도 알지만 그게 내 삶의 지향점과 괴리가 있다는 게 숙고를 종용한다. 그녀는 내게 성직자론, 전문가론, 노동자론 중 어느 쪽이냐 물었다. 어떤 과목의 어떤 활동이든 두루두루 다 할 줄 아는 - 대신, 적지 않은 이가 자신의 주력 특기라 내세울 게 없다 말한다- 초등교사의 특성처럼 그 세 가지 모두에 다 두루두루 해당되겠지만 분명한 건 나는 도저히 노동자론을 제 1가치로 두고 싶진 않다고 했다. 왜냐면 내 직업은 애초에 젊은 날동안 경제적 매력을 누릴 수 없는 성격이고, 공부를 하는 집단이고, 개중에 한 둘은 숨어있는 순수한 영혼들을 상대로 '월급만큼만' 하자는 결심이 스스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만 해도 '내가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를테면 누구든 아동학대 교사로 걸릴 수 있음을 보여준 PD수첩 내용이라든가 우리 학교에 발령난 신규교사가 힘든 학생 때문에 우는 날이 빈번하지만 누구 하나 -심지어 관리자까지-도와주는 이 없다는 것이라든가 선생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제 엄마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모범생이 되어버리는 우리 반 아이라든가, 상명하달로 세팅되어 있는 조직의 의사소통구조라든가 기타 등등 매일 내 호흡에 닿는 구체적 사안들이 이런 것들인데 과연 누가 성직자와 전문가만을 머릿속에 그리며 달려 나갈 수 있을까. 우리 반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그려준 내 얼굴 하나에 크게 감동을 하면서도 다시 기운이 빠지는, 웃을라치면 다시 숙연해지는 사이클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고 이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내 지난 동료가 자기 학교에 교육대학교 2학년 학생들이 실습을 왔는데 그들을 보는 마음이 너무 안 좋다고 했다. 학교에서 자신들의 일상을 지켜본 실습생들의 소감에 의하면 -약간의 과장이 있다 치더라도-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정말 순수한 마음을 내비친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현장 교사들이 날마다 어떤 심정으로 출근을 하는지 솔직히 고해바치지 못한 채 평소보다 더 준비된 수업과 학교 생활에 관한 일반적인 얘기만을 보여주고 들려줄 수밖에 없는 노릇이 양심에 찔린다고도 했다. 그들이 교대에 입학했던 2년 전에도 상황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는데 그들은 투철한 사명감으로 이 길에 들어서려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몰라서' 들어선 것일까.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은 내가 받아 들었던 그 질문지의 인터뷰이로 나서는 일 없이 자신의 일에서 행복감을 많이 느끼길. 교육은 국가의 생명이고 우리 각자의 인생은 소중하니까. 우리 반에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아홉살 아이가 하나 있는데 나 혼자 괜히 진지해져서 말했다. "진짜 선생님이 되고 싶어?선생님이 응원할게. 너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야."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밴드 잔나비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팔아요, 그대의 젊음과 공평히 바꿉시다'
노래 제목이 '웃어도 될까요'인데 나는 듣자마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대, 안정성에 젊음을 팔지 않았다고 자부하는가? 꼭 그랬던 것은 아니나 전혀 아닌 것도 아니기에 솔직히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그런 이유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진 않다. 나는 학생들과 어떠한 이해관계로도 얽히기 싫고 그에 관한 한 무균상태에 있고자 학생들에게 스승의 날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데, 중학생이 된 제자 하나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를 찾아왔다. 올해는 내가 학교를 비운 사이 왔다 갔는데 초콜릿 3개짜리 페레로로쉐에 포스트잇 쪽지를 붙여 다른 분께 맡겨놓고 갔었다. 잘 가르쳐줘서 감사하고, 중요한 시기에 나를 만나서 너무 좋았단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만 있으면 좋겠단다. 이만한 찬사와 이만한 안부를 받는 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나는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고 고마운 마음에 당장 답장을 써서 그 아이의 동생에게 전달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 쪽지를 내 책상 모니터에 붙여놨다. 이렇게 저렇게 다가온 감정들이 오늘도 나를 혼재된 교직관 속에 살아가게 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 나의 신분은 여전히 초등학교 1급 정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