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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Mar 31. 2023

선생의 갸륵한 시대정신

철밥통을 자발적으로 반납할 의지가 있음

 내가 신규교사일 때,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고 발령은 나보다 6개월 늦었던 어떤 동료교사가 현재 인스타 팔로워 만 명을 거느리는 인플루언서가 되었음을 우연히 보게 됐다. 책도 내고 블로그도 하는 모양인데, 내가 SNS에 열심히긴 해도 오직 아카이브용으로만 쓰고 있는 상황에 대체 내 개인정보는 어디까지 뻗쳐 있기에 나를 그녀에게까지 연결한 걸까. 전화번호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연락이 끊긴 지 10년도 넘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완벽히 타인이지만 그 시절엔 날 것의 햇병아리들로 별다른 가식 없이 나름 즐겁게 지냈더랬다. 계정을 대충 훑어보니 그녀는 최근 책을 하나 냈고 초등교육에 관한 것과 자신의 초등학생 자녀 양육방식을 공유하며 사람들과 소통 중이었다. 내가 동종 업계 종사자여서 더욱 그랬겠지만, 굳이 피드를 정독해보지 않아도 나로선 얻어갈 정보가 없는 페이지였다. 그러나 일반 학부모나 일부 교사들에겐 어필이 잘 되는 듯했다. 내 눈길을 끌었던 건 그저, 그녀가 예전 내가 알던 그 이미지가 전혀 아니라는 것과 현대 사회에서 개인 브랜딩이 얼마나 중요한가였다. 사실 교사 입장에서 그 내용들을 보면 우리의 본업 그대로를 제시하고 있는 거라 이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정보로서 작용한다는 자체가 나에겐 새로웠다. 나에겐 뻔한 말이라도 누군가에겐 꿀팁일 수 있고 그녀의 친절한 어투는 우리가 '선생님'에게 거는 기대치만큼은 되었다. 십 수년 전 그때도 그녀는 부드러운 말투의 소유자였다. 교사에 대한 긍정적인 모멘텀을 찾기 힘든 게 현실이지만 경력자로서 내가 가진 기본 장비-교육에 관한 모든 것, 직업적 노하우-자체에 수요가 있고 이것을 수요자들의 니즈에 닿도록 잘 다듬어 내놓기만 해도 파급력이 있을 수 있음이 새삼 느껴졌다. 그간 진지하게 나의 조언을 구하던 수많은 학부모님들을 떠올려보니 정말 그랬고 커리어를 이제 막 쌓기 시작한 후배 교사들과의 대화에서도 느껴본 감정이었다. 나는 당시 신규 시절을 함께 보냈던 또 다른 동료 교사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그동안 나는 뭐 하며 살았나 싶어서 후회되는 거냐’며 비아냥댔다. 아니, 천만에. 내 뉘앙스는 그게 아니란다 친구야. 수년의 육아휴직 후 이제 막 복직한 그녀에 비해 나는 쉼 없이 일선에 있으며 현실에 대해 냉혹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도대체 공립학교 교사의 정체성과 미래가 어디 있는가에 대해 속이 아리도록 궁리를 이어오는 중이었다. 다만 그 난제의 숲에서 허우적대며 그나마 ‘튼튼한’ 지푸라기를 하나씩 잡아나가려 애쓰는 게 별로 티가 안 날 뿐이었다. 그녀의 첫 반응이 예상 밖이라 순간 나는 괜히 전화를 걸었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녀의 입에서 나온 두 번째 문장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앞으로 교사들도 방향성을 찾아야 해"


 초등교사의 프로페셔널은-초등과 중등 사이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기에 나는 내 업에 대해서만 논하겠다-어디까지일까. 내가 막 교단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옛날' 선생님들이 약간 남아계신 시대였다. 주 5일제가 들어오기 전, 그러니까 토요일에 격주로 학교에 오던 시절의 끝자락을 몸소 겪은 사람이니 나도 참 오래되었다. 아무튼 그때에 비해 지금의 학교 분위기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교사든 모든 주체는 자타의 영향 아래 변화하였다. 분명 발전은 거듭 되어왔고 세상의 변혁에 맞추어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게 꼭 아름다운 발걸음이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다. 무릇 건강한 사회란 각 주체에 부여되는 권리와 의무가 정당하고 납득될 만하게 향상되어야 하는 바 우리는 마치 비정상적 풍선게임처럼 누구의 권리가 커지면 누구의 의무만 커져버리는 기현상을 떠안게 되었으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 현실은 차치한다. 다만 엔트로피가 증가할수록 기본에 집중하는 게 방법일 터, 내 포지션에서 취할 수 있고 취해야 하는 스탠스가 무엇일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보는 것이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 인간이자 미래를 염두엔 둔 인간이기에.


 줄곧 모범생 '1 티어'였기에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내게 호의적이었지만 사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교사 이미지라곤 죄다 부정적인 것들이다. 화풀이하듯 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패거나 대놓고 촌지를 요구하거나 누가 봐도 수업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어떠한 비도덕적 행위로 인해 유명했던 특정 인물들이 떠오를 뿐이다. 단언할 순 없지만 요즘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없을 거다. 요즘은 말 한마디로 나락에 떨어진 사례들이 너무나 많기에 감히 옛날처럼 함부로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초등학교 담임교사로서-학급을 맡지 않고 수업만 들어가는 교과전담도 있으나 초등교사는 디폴트가 담임이므로- 교과지식 및 학급운영능력은 당연한 것이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도덕성 및 인간애에 대해서는 개인 양심에 맡길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면 충분한 것인가. 아닌 것 같다. 물론 '현실'로서는 그만하면 적당하지만 조금 더 시대의 바이브를 타자면 당장 AI, Chat GPT 같은 것도 현장에 적절히 녹일 줄 알고 이것을 잘 다듬어서 학교 울타리 너머에도 그럴듯하게 내보일 필요도 있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보일 수 있는 자기 PR도 있는 힘껏 해보는 등 내일을 위한 작업들도 필요하다. 과연 교사의 프로페셔널은 어디까지인가. 공무원의 겸직금지 한도 내에서 펼칠 수 있는 각자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이며 '서류로 말을 한다'는 공무원 집단에서 각자의 창의성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공무원 패치가 진작에 적용완료된 입장에서 당장 오늘만 해도 내 감수성은 내 직장에서 만나는 성인들에 의해 처참히 무너졌는데 나는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가야 할는지.


 인플루언서 그녀에게 연락을 하자면 자연스럽게 해 볼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호기심까진 아닌지 벌써 관심에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그녀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는지는 궁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그녀는 지금의 '교육적' 이미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는 길을 아주 잘 잡은 것 같다. 내가 추구해 온 방향과 결이 다를 뿐 어쨌든 교사의 능력과 역할을 보기 좋게 다듬정렬하여 제시하였다. 내가 교사 타이틀을 달고 살아온 시간보다 앞으로 정년까지 남은 날이 훨씬 긴데 과연 내가 법으로 정해진 기한의 끝에 다다를지는 의문이다. 물론 지금 생각으론 철저하게 'X'다. 대신, 내 나이가 몇이 되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몸담는 삶이고 싶은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방식의 정비를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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