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삐삐 Sep 05. 2021

일상과 이상(Ideal) 사이에서

홍콩(Hongkong)


대학교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간 김에 어떤 봉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는데요,

저보다 한 살 많고 마드리드에서 온 여대생이 한 명 있었어요.


"관광객들은 아무것도 아닌 창문, 빨래 같은 것들을 다 사진 찍어. 정말 stupid 해"


뜨끔했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저도 유럽 도시에서 그러고 다녔거든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영화이고 그림이고 낭만인데

어찌 그냥 지나치고만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스튜피드'가 마음에 걸려 그 후로는 자제하게 되더군요. 

그녀를 만났던 때로부터 십 년이 흐른 뒤 마드리드에 갔을 때도 

사진에 각별히 더 유의하게 되던걸요.


스페인이야 워낙 관광국이니 더 그렇겠지만 저도 그 현지인의 마음이었던 적이 있었어요.

대학로에서 어떤 외국인 단체 관광객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아닌 벽을 찍고 꽃을 찍고 

친구와 셀카를 찍고 있는 제 사진까지 마구 찍더라니까요.

신경은 쓰였지만 저 사람이 뭐 나쁜 일에 쓰겠냐 싶어 그냥 뒀습니다.

한국이 신기한가 보다 했습니다.


홍콩!


땅값 비싼 이곳은  

집들이 유난히 더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집 빨래들이 밖에 다 걸려있고 

행인들은 이를 비교적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어요.

좁디좁은 골목의 허공이 작은 간판들로 가득 차 있는 걸 보니

이 섬의 높은 인구밀도와 공간의 협소함이 더 실감 나더군요.

중경삼림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거기에 나온 미드레벨 엘리베이터가 유명하다기에 

저도 가서 주민들의 출퇴근길을 함께 거닐어보기도 했죠.


사람들은 굳이 시간과 돈을 모아 남의 일상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찾아가죠.

참 별 거 없는 나의 하루인데 누군가에겐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내 하루도 뭔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일 아침도 알람과 함께 다람쥐 쳇바퀴질이 시작될 테지만

난생처음 맞이한 것들이라 최면을 걸어보아야겠군요.

그럼 분명 더 신이 날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홍콩의 밤거리를 수놓아준 버스커들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남자분은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하고 여자분은 멜로디언을 연주했는데

아직도 제가 본 버스킹 중 최고로 꼽는 무대였어요.

그분들은 음악을 정말 즐기시더라고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어찌 그리 행복하고 감동스럽던지요.

우리가 긍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죠.

귀국해서도 저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한참 찾아 듣게 됐어요.

그럼 그때의 황홀함이 즉각 상기되더라고요.

음악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에요.


지겨운 일상을 탈피하면 이상향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을까 싶지만

어찌 보면 둘은 한 끗 차이죠.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닌데,

현실은 사실 쉽지 않잖아요.

무지개 너머에 다른 세상이 없다 해도

있다고 믿는 게 왠지 더 힘이 나는 것 같고요.

살아가는 데 있어 꿈은 필요해요.

지나친 공상이나 자신을 작아지게 하는 어떤 거대한 것이 아니고서야 

뭔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는 게 삶을 더 기대하게 하는 것 같아요.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요.


당장 우리는 하루하루 위트를 발휘하여 

자신의 일상에 이상의 맛을 의도적으로 첨가해보는 게 좋겠어요.

사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출근길에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이어폰에 흘러나오면 

잠깐이라도 천국이 느껴지잖아요.

그렇게 본인을 얼르고 달래서 오늘을 살아가고 더 빛이 날 내일로 나아가는거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예요.


Bravo my life!


 



매거진의 이전글 녹지 말아줘, 제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