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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Sep 14. 2021

걱정마, 네 뒤엔 내가 있다

중국 - 웨이하이(Weihai)


칭다오에서 차를 타고

장보고 유적지에 갔습니다.

적산 법화원, 장보고 기념관, 신라방이 있네요.

역사 덕후인 저는 저 아래 펼쳐진 주황색 집들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저 바다를 건너 남의 땅에 터 잡으신 거군요.

옛 무언가가 내 눈앞에 입체카드처럼 튀어 오른 모습에

저는 그저 무성의 '와-'만 연신 외쳐댔지요.


한편, 높은 데서 이를 굽어보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장보고 장군이십니다.

저도 외국 좀 나가본 사람이라 이제껏 많은 상징물들을 보아왔는데

개인적으로 제가 본 동상 중 가장 늠름했어요.

타국에서 본 내 나라 사람이라 더 그랬겠죠?

매우 크고 높아 한없이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위압감이 아닌 든든함이었어요.


지켜줄게.

걱정 마.

넌 네 일을 하렴.

 

당시 당나라에서 일상을 나던 우리 신라인들에게

해상왕이라 일컬어지는 이 사내의 존재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요?


문득, 어릴 적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네 뒤에는 아버지가 있다"


아마 취기가 있으셨을 거예요.

표현에 인색한 부녀지간이라

저런 말이 나왔다는 건

분명 평범한 날은 아니었을 겁니다.

수능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버지 차 안에서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몰라 펑펑 울었던 열아홉 그때를 빼고는

가족에서 별다른 내색을 해본 적도 없지만,

부모님은 딸의 애씀을 알고 계시겠죠.


학업을 이유로 일찍 집을 떠났고

취업을 이유로 영영 집을 떠나왔습니다.

이전에도, 지금도, 이후로도

저는 제 앞에 놓인 길을 부모님 근처에서만큼은 최대한 덜 소란하게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그 지지를 후광 삼아서요.

그리고 그게 최소한의 도리인 것 같아서요.

한편, 그 길에서

갈팡질팡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나의 적나라한 소란함에 태클을 걸어주는

몇 안 되는 내 친구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저는 동물과 안 친하지만 호랑이와 사자는 좋아해요.

저를 보호해줄 것 같은 아우라 때문이죠.

열 살 난 제 학생 한 명은 "선생님이 잡아먹힐걸요?"라고 웃던데

그런 지나친 현실주의는 애초에 접어두고

그저 말없이 내 옆 또는 뒤를 따르며 악당들을 물리쳐주리라는 환상만이 살아있을 뿐이죠.

제법 큰 사이즈의 인형이라도 집에 두고 싶었지만 비싸서 참았습니다.

사실, 집에 떡하니 있으면 무서울 것 같아요.


인생의 모든 선택은 내 손에서 이루어지고 그 결과도 온전히 내게로 쏟아지지만

보이지 않는데서, 가끔씩은 보이는 데서 감동을 쥐어주는 뭇사람들에 힘입어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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