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휴일 아침, 현금을 인출하러 지하철 바로 앞 은행 ATM에 갔다. 들어서자마자 여든은 훨씬 넘어 뵈는 할머니가 나를 마주 보는 방향으로 서 계시면서 자신의 오른쪽을 지나치는 어떤 남자-얼굴은 보지 못했는데 목소리만으론 대학생쯤 되는 것 같았다- 에게 "이것 좀 도와주세요"라고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남자는 "제가 지금 바빠서.." 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멋쩍어진 할머니. ATM기가 열 개 이상 있는 꽤 널찍한 공간에 할머니와 나만 남았다. 나는 여전히 출입문쪽을 향해 서 계시는 할머니께 "도와드릴까요?"라고 본능적으로 말했다. 세상이 하 수상하여 모르는 이에게 선의는커녕 말 붙이기도 어려운 세상에 내 발화 기관은 이성의 간섭이 뻗치기도 전에 제 기능을 발휘해버렸다. 할머니는 내 말이 닿자마자 빨간색 카드를 내미셨는데 카드를 받아 들자마자 나는 아차 싶었다.
'아, 이놈의 오지랖..'
어디서 들어본 사건사고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스치는 게 아닌가. 도움을 주다가 오히려 변을 당하는, 특히 약자를 향한 인간의 무의식적 호의를 악하게 이용해 먹는 사례들이 영화가 아닌 실화라는 게 그제야 떠오를게 뭐람. 노인, 사기, 보이스피싱.. 아, 하필 여기가 또 은행이네? 내가 돈을 요구한 상황도 아닌데 내 상상력은 왜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뻗치는 걸까. 요새 뉴스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이미 남의 카드가 내 손에 있고 나도 갈길이 바쁘니 어서 미션을 클리어하자. 평소에 현금 쓸 일이 없어서 돈 뽑아본지도 오랜만이라 인출 절차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아무튼 나는 비밀번호 누르는 순서만 맨 뒤에 나오길 바랐다. 기기는 먼저 보이스피싱 여부를 물었다.
- 얼마 뽑을까요?
/ 20만 원.
- 만 원짜리랑 오만 원짜리 중에 뭘로 할까요?
/ 5만 원으로.
다행히 비밀번호는 그다음에 나왔다. 나는 "비밀번호 누르세요"하고 할머니의 오른쪽 옆 옆칸으로 옮겨갔다. 사실은 굉장히 의식하고 있었지만 겉으론 무던하게 자리를 떴다. 그런데 내가 고른 그 칸이 하필 고장이라 할머니의 왼편을 지나 세 번째 칸으로 -그 많은 ATM기가 그렇게 많이 고장 나 있을 수가 있나. 국민은행 000 지점 어떻게 된 겁니까- 이동했다. 그때 내게 확 안정을 준 게 있다. 천장 모퉁이에 매달린 둥근 물체, 바로 CCTV였다. 저게 모든 정황을 다 알고 있으니 이 공간에서 만약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완벽한 대변자가 되어줄 거야. 참나, 이게 뭐라고 거기까지 계산이 필요한 걸까. 내 과잉 의식인 것만은 아니라고 보지만 내가 어지간히도 세상에 겁을 먹고 있는 것도 맞는 것 같다. 아무튼, 인간이 나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저런 말없는 기계라도 나서서 날 지켜줄 테니 걱정 말고 '착하게' 사시길. 한편, 저 기기가 없었다면 한참을 찝찝해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의미에서 왠지 앞으로 AI의 세상까지 기대가 된다. 부스에서 용무를 보는 나를 향해 할머니는 두 번이나 "감사합니다"라고 목례를 하시고 먼저 은행을 나가셨다. 아까 속으로 할머니와 내가 주인공이던 소설 한 편이 절로 써지던 것에 대해 나는 스스로 겸연쩍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은 도덕 수업이 일주일에 한 시간씩 들었다. 도덕의 각 단원은 한 가지 덕목을 주제로 하고 4차시로 구성되는데 그 어떤 과목보다 수업 준비가 어렵다. 지식 전달이야 교사의 취미이자 특기지만, 이 교과의 존재 목적은 누구나 '뻔히' 아는 '선한' 것들을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언급하며 상대방에게 '실천 동기'를 심어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지만 안 하는 그 '착함'들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선사할 것인가. 사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법과 규칙에 단호하기에 학교 생활 중 어른 입장에서 절로 반성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선생님에게 제 부모님의 부부싸움 얘기도 스스럼없이 하는-듣는 선생님이 괜히 민망해지는-순수한 영혼들에게 옳고 그름의 꼼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실천은 안 되더라도 세 치 혀로 빠져나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교사들의 평균 양심지수가 다른 집단과 비교해서도 하찮지 않은 것은 비록 비자발적이더라도 이렇게 작업 환경 자체가 주기적으로 자기 성찰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리라.
나는 1년의 해외 체류 후 직장 근처로 다시 정착을 했는데 이곳은 지대 전체가 아파트 단지다. 그런데 이사 와서 놀랐던 게, 아파트 입구 경비실 앞에 날마다 택배가 쌓여있는데도 분실사고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입구에 CCTV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기기의 위치는 아직도 모르겠다. '제 택배를 잘못 가져가신 분은 다시 갖다 주세요'라는 쪽지가 붙은 걸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누군가가 작정하고 가져갔다기 보단-도난일 수도 있지만-'실수'로 보는 암묵적 믿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대형 복도식 아파트에 산지도 n년차에 접어드는데, 내가 며칠 집을 비워 내 택배만 덩그러니 길가에 놓여있던 숱한 날에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던지 멀쩡했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테이블에 그대로 둔 채 화장실을 갈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어디 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찬사 받을 만한 우리의 국민성은 맞다. 그런데 나의 이 소회를 들은 후배는 이색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그거, 남 눈치 많이 보는 우리 문화 때문 아닐까요. 혹시라도 걸리면 뭔 망신이에요."
우리 사회를 답답히 누르는 그 '남 눈치'라는 게 이렇게도 작용한다? 일리가, 없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뭐,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결과적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면 오케이다. 착한 마음들이 마음 놓고 제 꽃을 피우는 착한 우리나라가 되면 좋겠다. 여기 일개 국민 하나도 제대로 더 잘 살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