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기억의 문을 열며 시작되는 치유의 여정
나는 아이에게 다정하지 못한 순간들이 자주 있다.
말을 부드럽게 건네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퉁명스럽게 반응할 때가 많다.
아이가 서툴게 무엇인가를 할 때 “괜찮아”보다 “왜 그렇게 해?”가 먼저 나올 때도 있다.
아직 너무 어린 아이인데도, 나는 자주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마음을 앞세운다.
도와주기보다 기다린다는 이름으로 지켜보며, 때로는 방치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죄책감이 따라온다.
‘나는 왜 아이의 서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왜 아이의 울음 앞에서 여유롭지 못할까.’
이 질문들이 마음 깊이 남아 있었고, 단순한 양육 방식의 고민을 넘어 _“나는 왜 이런 반응을 하게 되는 사람일까”_라는 물음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렴풋한 확신이 생겼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의 뿌리는 지금이 아니라, 어딘가 과거에 남아 있는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 기억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으며, 아이의 울음과 서툼 앞에서 나를 흔들어 놓는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릴 수는 없어도, 그 순간 내 안이 불안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잠겨 있던 ‘문’을 아직 열어보지 않은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사소했을 순간이지만, 어린 나에게는 감정의 방향을 바꿔놓은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문을 다시 열어보기로 했다.
이 글은 단순히 아픈 기억을 꺼내려는 시도가 아니다.
과거를 탓하거나 상처를 증명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그보다는 부모가 되며 비로소 흔들리기 시작한 내 감정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
그리고 상처받았던 어린 나를,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조심스럽게 다시 바라보려는 과정.
나는 이 여정을 통해 아이에게 더 다정해지고 싶다.
감정보다 반응이 먼저 나오던 순간을 줄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울음 앞에서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조심스럽게 이 문을 연다.
아주 오래전, 문밖에 쪼그려 울고 있었던 나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이 글은, 그 과정을 통과하며 내가 다시 나를 회복해 가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