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 overture>
영화를 선택할 때 어떤 점들을 눈여겨보시나요? 주연배우, 장르, 감독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저는 포스터의 디자인이나 예고편을 보고 결정해요. 감독이 누구인지, 어떤 배우가 나오는지, 대충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결정 후에 확인하거나 때로는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영화관으로 가는 편입니다. 대체적으로는 제가 고른 영화에 만족하는데요. 가끔 ‘뭐야? 예고가 다 했네!’ 실망스러울 때도 있죠. 예고편에 나온 것이 전부인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예고편을 엄청 잘 만든 걸 수도 있겠네요.
오페라 공연에서 제일 먼저 연주되는 곡을 ‘overture(서곡)’이라고 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막이 내려진 채 연주되어 관객들은 서곡을 통해 공연에 대한 첫인상을 느낄 수도 있어요. 앞으로 전개될 작품에 대한 분위기를 암시하기도, 작품의 가장 강렬한 부분의 분위기를 담기도 하는데 몇몇 오페라 서곡은 작품보다 더 유명하기도 해 오페라를 꽤 좋아한다는 애호가들 역시 작품으로는 관람한 적 없는 서곡들도 있습니다. ‘빈 오페레타의 창시자’로 불리는 작곡가 주페의 오페레타 <경기병> 서곡이 대표적이죠.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곡이었지만 ‘경기병 서곡’ 전체가 제목인 줄만 알았네요. <경기병>은 오늘날 오페레타 작품으로는 거의 공연되지 않고 ‘서곡’을 비롯한 몇 곡만 연주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두 동생 모두 음악가로 일명 음악 가족 ‘요한家’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페레타의 왕’이라고도 불리는데요, 그가 작곡한 열여섯 작품의 오페레타 가운데서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Die Fledermaus(박쥐)>의 서곡 또한 유명합니다. 요한家 특유의 경쾌한 선율은 작품의 스토리와도 잘 어우러져서 세계의 오페라 극장에서 매년 12월 31일에 단골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왈츠의 황제답게 무도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는 재미있는 인물 설정과 유머스러운 대사 그리고 화려한 춤과 음악까지 모두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 앞서 소개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도 빼놓을 수 없어요. 특히 2010년 개봉한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 속에 인상적으로 삽입되었는데 왕위를 포기한 형 때문에 본의 아니게 왕이 된 주인공 ‘버티’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마이크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 게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국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데 말을 더듬다니요.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아내의 심정은 또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버티의 아내는 좋은 스피치 선생님을 찾아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미 말더듬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온 버티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요. 시작도 해보지 않고 기싸움만 하다 돌아가려는 버티에게 선생님은 헤드폰을 씌워주며 글을 읽으라 합니다. 이때 헤드폰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 바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죠. 저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몰라요. 말의 힘을 알고, 말의 힘을 믿고, 말로써 일을 하는 저에게 무척 울림이 있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음악이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안정시키는지 또한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말’에 고민이 있다면 라디오 디제이나 성우처럼 잔잔한 음악을 깔고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음악의 속도나 분위기에 맞춰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밖에도 서곡이 유명한 오페라 작품들은 많아요. 경쾌한 리듬이 인상적인 로시니의 <도둑까치>, ‘맥도널드 3000원 송’ 광고 음악으로 유명한 로시니의 <빌헬름 텔>, 매혹적인 여주인공 카르멘으로 유명한 비제의 <카르멘> 등...... 어떤 이들은 오페라 서곡이야말로 작품의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음악이라고 하는데요. 문득 우리의 인생을 서곡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음악이 탄생될지 궁금해집니다.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펼쳐질 인생 후반부의 서곡은 우리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