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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유 Apr 08. 2021

[내 생애 첫 오페라/아는 만큼 들린다]

<편지의 이중창 / 피가로의 결혼>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보니 참 맞는 말이더군요. 예를 들어 미술관에서 혼자 한 코스를 돌며 관람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안 걸리지만 도슨트의 해설에 따라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듣다 보면 한 시간은 금세 지나가잖아요. 그리고는 인생을 살아가다 어느 한순간에 ‘한 번 봤던 작품, 한 번 들었던 설명’을 통쾌하게 써먹는 날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스치듯 들었던 음악인데 알고 보니 유명한 오페라 작품의 아리아였던 적도 많았어요. 적어도 제게는 그랬답니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 저의 음악 선생님은 노래를 가르치고 부르게 하는 것 외에도 직접 노래를 불러주셨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클래식 감상곡 50곡을 전교생에게 카세트테이프로 만들어 주셨어요. 성적을 위한 공부보다는 ‘어른이 되었을 때 그래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앞선 마음이 크셨나 봅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고 난 다음엔 음악실에서 영화를 보여주셨는데 지하에 있는 어둡고 컴컴한 음악실에서 영화를 보는 맛이란! 정말 최고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쇼생크 탈출>이었어요.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che soave zeffiretto(저녁 산들바람은 불어오고)’, 편지의 이중창을 놓쳤다는 점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데 그 시절 저는 아는 것이 없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거죠.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이 노래는 백작부인과 하녀가 같이 부르는 이중창인데요, 이중창이라고 하면 대개 남녀 혼성으로 이뤄진 곡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저는 비제의 오페라 <진주 조개잡이>에 나오는 두 남자 주인공의 이중창이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에 나오는 두 자매의 이중창처럼 남남 또는 여여가 부를 때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피가로의 도움을 받아 온갖 어려움을 뚫고 결혼에 성공한 백작은 타고난 바람기를 버리지 못하는데요. 최고 권력자인 백작의 바람기를 멈추기 위해 백작부인과 하녀 수잔나는 작전을 세워요. 서로의 옷을 바꿔 입고 백작을 유혹해 백작 스스로 바람기를 멈추게 하려는 계획입니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아리아가 바로 ‘편지의 이중창’이라고도 불리는 ‘che soave zeffiretto(저녁 산들바람은 불어오고)’인데 노래의 구조가 백작 부인이 백작을 유혹하는 한 구절을 부르면 수잔나가 그것을 편지지에 받아쓰는 형식이에요.


Che soave zeffiretto questa sera spiera

sotto l pine del boschetto ei gia il resto capira

canzonetta sull'aria che soave zeffiretto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오늘 밤 불어오네

숲의 소나무 아래 나머지는 그가 알 거야

소리 맞춰 노래해 포근한 산들바람아



나무 아래서 이뤄지는 사랑은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똑같나 보네요.



그대여 이렇게 바람이 서글피 부는 날에는

그대여 이렇게 무화과가 익어가는 날에도

너랑 나랑 둘이서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지난날을 생각하며 이야기하고 싶구나

몰래 사랑했던 그 여자 또 몰래 사랑했던 그 남자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그 누굴 사랑하고 있을까

(김지애, 몰래한 사랑)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의 수많은 오페라 작품 중에서도 <돈 조반니>, <마술피리>와 더불어 ‘모차르트 3대 오페라’로 손꼽히는데 아름다운 음악 선율이 큰 역할을 했고 그 음악은 영화 속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주인공인 ‘앤디’가 LP 레코드를 전축에 걸고 소프라노 이중창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장면에서 감옥의 모든 죄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놀라며 스피커를 바라보는데요. 이때 죄수들의 모습을 배경으로 장기수 ‘레드’ 역할의 모건 프리먼이 낮은 목소리 독백을 합니다.



나는 지금도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 않다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나은 것도 있다

난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의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서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영화 <쇼생크 탈출> 中 레드의 내레이션


 나는 이제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는 알고 있지만 이 영화의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다만 이 명 장면의 기억이 희미한 이유로 오늘 밤 <쇼생크 탈출>을 다시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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