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 하바네라>
목소리에도 첫인상이 있습니다. 첫 만남에서 느낀 목소리의 첫인상은 꽤 오래가죠. 특히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으로 맺는 인연일수록 신뢰감이 중요한데요. 저음의 목소리로 여유 있게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 리더들이 많습니다. 한때 백지연, 김주하 등 여성 앵커들의 음성 톤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이나 이미지가 그려질 거예요. 저음은 단순히 음이 낮은 것뿐만 아니라 적당한 두께감이 느껴져 안정적이라고나 할까요.
오페라에서 대부분의 주연은 소프라노와 테너의 커플로 이뤄지죠. 바리톤이 주연을 맡는 모차르트의 <돈조반니>, 베르디의 <리골레토>처럼 메조소프라노가 주연을 맡는 작품도 있습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프랑스 작곡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뮤지컬이나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오페라 <카르멘>은 서곡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하나도 놓치기 아까울 만큼 내용이나 아리아 그리고 등장인물의 매력 또한 뛰어난 작품이랍니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카르멘’은 안달루시아의 매혹적인 집시 여인입니다. 당시 유럽의 집시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가장 열악하고 힘든 일 또는 불법적인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었는데 그 열악한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담배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고 해요. 카르멘 역시 담배 공장에서 일을 하는 여인인데 드센 성격의 집시들 가운데서도 유독 더 강한 캐릭터입니다. 남자 주인공 돈 호세는 세비야 기병의 하사관으로 먼 고장에서 온 순박한 청년입니다. 그리고 돈 호세의 어머니가 보낸 여인 미카엘라와 남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투우사 에스까미요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네 명의 등장인물이 펼치는 작품이죠.
1막이 시작되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보낸 미카엘라가 기병대 하사관인 돈 호세를 만나러 위병소로 찾아옵니다. 하지만 잠시 떠나 있던 돈 호세와 길이 엇갈리죠. 점심시간이 되자 근처 담배 공장에서는 여공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중에는 카르멘도 섞여 있어요. 군인들 사이에는 이미 카르멘의 매력은 유명하지만 돈 호세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카르멘은 작정하고 그를 유혹합니다. 이때 부르는 아리아가 유명한 ‘하바네라’ 입니다.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Que nul ne peut apprivoiser
Et c'est bien en vain qu'on l'appelle
S'il lui convient de refuser
Rien n'y fait, menace ou priere
L'un parle bien, l'autre se tait
Et c'est l'autre que je prefere Il n'a rien dit, mais il me plait
L'amour, l'amour L'amour est enfant de Boheme
Il n'a jamais, jamais connu de loi Si tu ne m'aimes pas, je t'aime
Si je t'aime, prends garde a toi L'oiseau que tu croyais surprendre
Battit de l'aile et s'envola L'amour est loin, tu peux l'attendre
사랑은 들에 사는 새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요
거절하기로 마음먹으면 아무리 해도 안 되지요
협박을 해도 안되고 꾀어도 안 되지요
말을 잘하거나 말 없는 분 중에서 말없는 걸 택할래요
아무 말을 안 해도 저를 즐겁게 하니까요
사랑, 사랑 사랑은 집시 아이,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싫다 해도 나는 좋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때는 조심해요
당신이 잡았다고 생각한 새는 날아가 버릴 테니까요
카르멘이 이 노래를 부르며 꽃 한 송이로 돈 호세를 유혹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관심 없던 그의 마음에 묘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마침 이때 미카엘라가 나타나 ‘어머님께서 우리 둘이 결혼하라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요. 미카엘라는 입맞춤을 하고 떠나고 돈 호세는 결혼을 결심하며 카르멘에게서 받은 꽃을 버리려는데 때마침 담배 공장에서 소란이 일어났어요. 카르멘을 포함한 여공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고 하필이면 기병대인 돈 호세가 카르멘을 호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카르멘이 가만있지 않았겠죠? 결국 카르멘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를 풀어주고만 돈 호세는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됩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돈 호세가 감옥에 갇혔든 말든 석방이 되었든 말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카르멘은 여러 집시들과 함께 술집에 있는데요. 카르멘이 있는 술집에 유명한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나타나 남성미를 과시하며 카르멘을 유혹하지만 카르멘은 그에게 별 관심이 없어요. 당시 투우사는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정도만큼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에스카미요는 잠시 머물다 떠납니다. 집시 일행들은 밀수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돈 호세에게 마음이 있던 카르멘은 친구들과 같이 떠나지 않겠다고 하죠. 하지만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함께 가겠다고 하는데 때마침 돈 호세가 나타납니다. 감옥에서도 내내 당신 생각만 했다며 부르는 달콤한 ‘꽃노래’도 이 오페라의 유명한 곡이에요. 마음이 완전히 넘어가버린 돈 호세는 귀대를 포기하고 카르멘과 함께 밀수업자 패거리에 끼게 됩니다. 산속에 숨어있는 밀수꾼 일행들 중에 있는 돈 호세를 찾기 위해 미카엘라가 찾아오는데 수풀 속에서 인기척이 나자 보초를 서고 있던 돈 호세는 그만 미카엘라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총으로 쏩니다. 다행히 미카엘라를 맞히지는 않았지만요. 그런데 이 일로 엉뚱한 사람 하나가 발각돼요. 바로 카르멘을 찾아온 투우사 에스카미요였죠. 두 남자는 서로가 카르멘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결투를 하려는데 다른 밀수꾼 일행이 나타나는 바람에 결투를 미룹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미카엘라의 소식에 갈등하는 돈 호세를 보며 카르멘은 궁상떨지 말고 가버리라고 하는데 우유부단한 돈 호세는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니라며 산을 내려갑니다. 카르멘은 찌질한 돈 호세에게 완전히 정이 떨어져 버렸겠죠.
에스카미요의 투우 경기가 열리는 날. 카르멘은 군중들 사이에 있던 돈 호세와 마주치는데요. 돈 호세는 계속해서 카르멘에게 구애를 합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오, 나의 사랑을 받아주시오. 하지만 찌질하게 떠난 돈 호세를 이제 에스카미요에게 마음이 넘어간 카르멘이 받아줄 리 없잖아요. 이들이 부르는 최후의 이중창은 무척 긴장감이 돕니다.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죽을 거예요. 저를 찌르거나 그냥 가게 해줘요’ 카르멘과 투우사가 갈등을 벌이는 사이 투우장에서는 함성이 울러 퍼지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돈 호세는 카르멘을 찔러 죽입니다. ‘나를 체포하시오! 내가 그녀를 죽였소!’ 오페라 <카르멘>은 화려함으로 극대화한 슬픔으로 막을 내립니다.
당시 작곡가 비제는 프랑스에서 촉망받는 예술가로 이탈리아 국비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었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탄생한 작품이 바로 <카르멘>이었는데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을 본 당대의 저명한 예술가들은 모두 극찬을 했다고 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중들에게는 외면을 받았죠. 그때까지만 해도 오페라 여주인공은 청순가련형의 아름답고 청초한 여인상이었거든요. 그에 비해 카르멘은 억세고 파격적인 캐릭터였고 유럽 최하위 계급인 집시 여주인공의 밀수, 사기, 치정살인까지 다룬 작품이었으니 커플이나 가족이 보기에는 불편했을 수밖에요.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작품이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자 비제는 상심했습니다. 작품에 공을 들이느라 과로로 허약해진 데다가 원래 소심한 성격이었던 비제는 심장 질환으로 석 달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음표 하나 버릴 게 없다. 오페라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이 작품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고 브람스 역시 <카르멘>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했어요. 또 니체는 ‘풍요롭고 건축적으로도 완벽하다.’라고 했을 만큼 예술계에서 인정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매력적인 오페라 작품으로 손꼽히지만 정작 비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이죠.
하바네라는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클래식 콘서트 무대에서 메조소프라노들의 솔로 곡으로는 베스트 곡입니다. 메조소프라노들이 맡는 역할이 대부분 하녀, 엄마, 동생 등의 조연이어서 소프라노와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 대부분인데 반해 카르멘은 주연의 솔로 아리아가 유명하기 때문이죠. 특히 하바네라를 부를 때는 빨강 드레스를 입고 나와 매혹적인 눈빛으로 관중을 유혹하며 연기를 펼치기도 하는데 꽃 한 송이를 준비해 객석에 있는 남성 관객에게 던지는 퍼포먼스 또한 볼만한 포인트입니다. 아! ‘하바네라’라고 불리는 이 곡의 정확한 제목은 ‘L'amour est un oiseau rebelle(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입니다. 쿠바의 무곡으로 정확히는 ‘아바네라’ 라고 발음해야 하지만 ‘카르멘의 하바네라’ 는 그 자체가 제목으로 통할만큼 유명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