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1
뾰족한 발톱시커먼 털
천둥 같은 목소리덩치도 무시무시해.
가만히 있으면 냠냠 먹힌다.
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글·그림 / 64쪽 / 15,000원 / 사계절
2021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유아 그림책 부문 대상 수상작
서울이지만 숲에 둘러싸여 계절의 풀 냄새와 자연의 소리들이 꽉 찬 ‘마시멜롱’ 마을 같은 곳에 살았다. 언제든지 선한 인심이 넘칠 것 같은 마을. 그 마을에 푹 빠져 산 지 10년이다.
나에게 『이파라파냐무냐무』의 주인공은 ‘털숭숭이’다. 털숭숭이의 모델은 내가 키우는 ‘쿵’이라는 개다. 마시멜롱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털숭숭이처럼 쿵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찾아왔다. 3년 전 제주도에서 떠돌다 구조된 쿵을 가족으로 맞았다.
내향적이고 소심한 쿵은 아무리 조용히 다녀도 숨겨지지 않는 큰 덩치의 개다. 쿵이와 산책을 나가면 호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몇몇 사람들이 내 등 뒤로 거친 말들을 내뱉기도 했다.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말과 억양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동네 주민들이 두려워졌다.
‘나도 이제 먼저 인사하지 않을 거야’라는 소심한 복수를 하고 마음을 닫아버렸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오해의 벽을 촘촘히 올렸다. 그렇게 편하지 않은 시간이 쌓여갔다. 나는 인적 드문 밤 시간에 산책을 했다. 누군가 나와 쿵이를 보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라고 기분이 나빠졌다.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내 태도가 전달되었는지 그렇지 않아도 소심한 쿵이가 더 소심쟁이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와 쿵이를 감옥에 가둬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정말 내가 쿵이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이 이런 것이었을까. 먼저 벽을 치고 가시를 두른 건 나였다. 내가 보호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쿵이와 산책 다니며 좋은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주민들이 눈에 보였다. 내 성격에 물론 쉽지 않았다. 괜히 눈인사를 주고받다 불쾌한 일을 겪으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려가 넘쳤고 따뜻했다. 쿵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인사하는 법을 배워갔다. 내 마음도 조금 풀어졌다. 내 안의 작은 마시멜롱이 나를 이끌어주었다.
본문 내 유일한 세로 판형으로 아주 큰 털숭숭이와 작은 마시멜롱이 대조를 이루며 마주 보는 장면이 있다. 독자는 작고 연약한 마시멜롱이 만나게 되는 압도적인 크기의 털숭숭이를 보며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잠시 생각해본다. 발밑에 있는 마시멜롱과 마주한 털숭숭이 마음은 어땠을까?
쿵이는 작은 개를 만나면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려 몸을 낮춰주거나 가만히 지켜보면서 안절부절 발만 동동 구른다. 주먹만 한 아이들이 짖고 아르릉거리면 오히려 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큰 것도 작고 약한 것에 나름의 두려움이 있다는 걸 쿵이를 보면서 알았다. 털숭숭이도 발밑의 보드라운 마시멜롱을 보며 두렵지 않았을까?
마주 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하다. 털숭숭이는 입을 크게 벌려 속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마시멜롱을 공격하는 건가 오해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는 간절한 바람의 장면이기도 하다. 어른이 돼서 입을 왕 벌려 누군가에게 내 입속을 다 보여준 적이 없다. 개들도 상대방을 정말 신뢰하지 않으면 자신의 입을 벌려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꽉 막힌 관계를 풀려 소통하려고 할 때 이렇게나 간절하고 순수해질 용기가 있을까.
‘자 내 안을 다 보라구’ 털숭숭이의 입 쩍 벌림에 박수를. “이빨 아파 너무너무”라는 말이었음을 알게 된 마시멜롱들이 털숭숭이의 말투를 따라 한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상대방의 언어와 행동을 내 안으로 초대한다. 다른 모양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마시멜롱 마을이 내 내면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겉만 보고 편견을 만드는 일도 전쟁을 부추기는 일도 내 안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절망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상황이 와도 “정말 그런지 가봐야겠어”를 말할 현명한 마시멜롱이 한 마리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자리를 찾을지도 모른다.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저기요…’라며 손들고 있을 자신의 마시멜롱을 잊지 말기를.
내가 밀어냈던 털숭숭이는 뭘까? 털숭숭이를 이해할 용기가 내 안에 있을까? 귀 기울이고 다가가는 용기가 늘 내 곁에 있기를. 최근 쿵이가 날로 소심해지는 가운데 이빨이 아픈 걸 알아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부정교합 장애가 심각한 구강과 치아 손상을 일으켰다. 수의사 선생님이 이가 아파서 더 소심하고 예민해졌을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바로 치료 수술을 했다. 마치 털숭숭이처럼 쿵이도 이빨 하나를 치료했다. 그 이후로 정말 쿵이가 좀더 안정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나파 아나파 냐냐냐” 쿵이가 정말 털숭숭이였나 보다.
이지은 작가는 한국과 영국에서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 했습니다. 동물의 생태와 내 마음의 변화에서 이야기를 찾습니다. 쓰고 그린 이야기로는 『종이 아빠』 『할머니 엄마』 『빨간 열매』 『팥빙수의 전설』이 있습니다. 『이파라파냐무냐무』로 2021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유아 그림책 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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