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바치는 뜨겁고도 냉철한 사랑 고백
리멤버 홍콩
전명윤 지음 / 312쪽 / 16,800원 / 사계절
20세기 동아시아의 도시들 가운데 사연 없는 도시가 있을까. 제국의 병참기지였다가 핵폭탄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 오랫동안 지역 차별의 대명사였으며 군사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광주, 한국인들이 최근 가장 사랑하는 관광지면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청룡부대가 학살한 퐁니·퐁넛 마을에 접한 다낭까지, 20세기 전쟁과 폭력이 남긴 상처에 아픈 이야기 한 자락 가지지 않은 동아시아의 도시를 찾긴 어렵다.
슬픈 이야기로는 홍콩을 능가하는 도시들이 많이 있을지 모르지만, 홍콩만큼이나 독특한 이야기를 품은 도시는 아마 또 없을 것이다.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정통 왕조 청나라 치하에서 세계를 휩쓴 제국주의 국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이제 다시 세계 초강대국 중국의 지배를 겪는, 그야말로 20세기 세계의 권력 지도를 압축해놓은 것만 같은 도시가 바로 홍콩이다. 중국이지만 중국이 아니고, 영국이었지만 영국이 아니었던, 그래서 홍콩으로만 존재했던 도시에 대한 기록이 바로 『리멤버 홍콩』이다.
여행 작가가 썼다지만 이 책은 여행서가 아니다. 홍콩을 주인공 삼아 20세기 중국의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책이고, 중국 반환 이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홍콩인들의 사회운동을 정리하고 분석하고 기록한 사회학책이고, 이제 다시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과거의 홍콩을 애써 기록하기 위해 직접 취재한 홍콩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르포 문학이다. 나는 평화운동 활동가로서 우산 혁명에서 2019년 피시볼 레볼루션으로 이어지는 홍콩 시민들의 사회운동 방식에 주목해 읽으면서도 자꾸 ‘이렇게 읽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홍콩을 너무나도 사랑한 사람이 홍콩에 보내는 사랑 고백서이기 때문이다.
홍콩을 너무 사랑하지만 저자는 홍콩을 무작정 찬양하지 않는다. 홍콩이 왜 홍콩이 되었는지, 홍콩인이 왜 홍콩인이 되었는지, 이 독특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정체성에 20세기의 중국과 영국 사이에 낀 역사와 정치와 문화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정확히 바라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 시선의 기원이 사랑일 뿐, 시선의 각도는 예리하고 날카롭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인의 존재 방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중국과 맞서는 홍콩인들에 응원을 보내면서도 시위가 중국 혐오나 여성 혐오로 흐르는 지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홍콩에 대한 작가의 사랑은 무척 뜨거운 동시에 아주 냉철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아는 홍콩은 딱 이 정도였다. 한 번도 홍콩에 가보지 않았고, 한 번도 홍콩의 역사나 정치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 열렬한 사랑 고백을 듣고 나니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대체 어떤 매력을 가진 도시이기에 이토록 강렬한 사랑을 고백할까.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홍콩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환타 작가가 사랑한 도시 홍콩은 과연 남아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용석_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평화는 처음이라』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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